오피니언 사설

아쉬움 남긴 한·일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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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청와대 상춘재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이른바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에 있는 한.일 간에 이해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격식을 내던진 실무형 셔틀외교가 가동된 지 세 번째 회동이며, 공식.비공식 정상회담을 모두 합치면 일곱 번째다.

이번 회담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 고위 인사들의 과거사와 관련된 잇따른 망언과 망동 등으로 인해 한국민의 감정의 파고가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 이를 반영하듯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 반대 시위가 잇따랐다.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북핵과 과거사 문제였다. 북핵과 관련해 노 대통령은 일본의 적극적이면서도 전향적인 협조를 구했고 고이즈미 총리도 평화적 해법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과거사 인식에 있어선 팽팽한 긴장이 있었다. 노 대통령이 일본의 과거사 인식과 관련한 한국민의 분노와 양국 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분명하게 전달했으나 고이즈미 총리가 기존의 입장을 견지해 교과서 위원회를 구성하고 제3의 추도시설 문제에 대한 고려를 검토한다는 아주 낮은 수준의 합의에 그쳤다.

북핵과 과거사 문제는 한.일 양국 간에만 그 파장이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동북아 정세 전체와 맞물려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과거사 문제나 신사참배 문제는 일본이 보다 적극적인 사과와 해명이 있어야 했다. 최근 한국과 중국이 일본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노출한 이유가 바로 이 문제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변화된 자세 없이는 앞으로도 동북아에서 일본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나마 위안을 찾는다면 북핵의 평화적 해법에 대한 공감을 재확인한 것과 일본의 뻔뻔하고도 편의적인 과거사 인식에도 불구하고 한.일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한.일 양국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열어가자면 양국의 우호는 필수적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용기와 결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