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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아시아] 영어의 바다에 빠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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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베이징 곳곳의 관광 명소는 원어민과 얘기를 나누려는 학생들이 즐겨 찾는 장소다. 사진은 천안문광장 북쪽의 관광지 구로우에서 외국인과 담소하는 중국 여학생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영어는 이미 '세계 공용어'다. 따라서 영어 앞에서 반미(反美)냐 친미(親美)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시아 각국이 너나없이 영어 속에 푹 빠져 있는 이유다. 특히 중국은 요즘 들어 부쩍 영어 학습에 열심이다. 2008 베이징(北京) 올림픽이 코앞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영어는 기본이고, 이젠 중국어.한국어에까지 눈을 돌리고 있다. 아시아에 부는 영어 열풍의 현장을 살펴본다.

"영어는 돈을 버는 도구다!"

이달 초 허베이(河北)성 남부 선쩌(深澤)현의 한 중학교 교정에 설치된 대형 마이크에서 신들린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농구대에는 'Never let your country down(조국을 실망시키지 마시오)'라고 쓴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8000여 명의 학생이 모여 앉아 열광적인 손짓과 박수로 한 영어강사의 강의에 화답했다. 6월 7일자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전한 모습이다.

이 강사는 '미친 영어(Crazy English)'로 유명한 리양(李陽.36). 그는 빠른 속도로 문장을 반복하는 그만의 독특한 학습법으로 10여 년 전부터 중국 전역에 '영어 폭풍'을 몰고 온 장본인이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화가 화두로 등장하면서 리는 아예 개인 시간을 포기했다. 여기저기서 밀려드는 강연 요청 탓(?)이다. 그가 올해 전국 각지에서 마련한 공개 강좌는 300여 회. 지금까지 그에게 직접 강의를 들은 사람만 3000만 명쯤 된다.

이처럼 중국은 요즘 영어에 푹 빠져 있다. 또 다른 현장을 보자.

베이징시 서쪽에 위치한 광보(廣播.방송)대학. 교정 한구석에 자리 잡은 호두나무 숲은 매주 금요일 오후가 되면 부산해진다. 적게는 2~3명, 많게는 10여 명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뭔가를 열심히 이야기한다. 중국 학생들이 서구 유학생들에게 영어를 배우는 장소다. 광보대학은 이곳을 '영어광장(英語角)'으로 지정했다.

베이징시 허우하이(後海) 공원 입구. 이 공원은 호수를 끼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의 발길이 잦다. 저녁때만 되면 공원 입구에 '영어 난장(亂場)'이 선다. 학생들은 이곳을 서성대다 서구인을 만나면 무조건 안내를 자청한다. 상대방이 동의하면 주변에 서 있던 다른 중국 학생들도 우르르 달려들어 영어로 말을 건넨다. 즉석 '원 포인트 레슨'을 받는 셈이다. 흡사 영어 회화에 굶주린 사람들 같다. 아사히신문은 최근 베이징시 중심부에 있는 '옥스퍼드 베이비 유아원'을 소개했다.

"Tommy, one more time. Melisa, try now(토미, 한번 더 해 봐. 멜리사, 지금 시작해라)"

현재 베이징에서 급격히 늘고 있는 '솽위(雙語.2개국어) 유아원', 즉 영어 유치원이다. 여기서는 아이 모두에게 영어 이름이 주어진다. 하루 수업 시간의 절반 이상은 미국.캐나다 출신 보육사와 함께 영어를 사용한다. 시 교육위원회의 관계자는 "무허가 유치원까지 합칠 경우 베이징의 영어 유치원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베이징시는 지난달 '시민 영어 교육 계획'을 발표했다. 목표는 전 시민의 3분의 1인 500만 명이 간단한 영어 회화를 구사할 수 있게 하는 것. 이를 위해 시 정부는 ▶무료 영어 강좌 개설▶영어 웅변 대회 개최▶TV 영어 방송 제작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시 산하의 각 행정기관도 독자적인 영어학습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둥청(東城)구는 40세 이하의 직원들에게 실용 영어 구문 300개를 의무적으로 암기하도록 했다. 시 교통위원회는 지하철 승무원 전원에게 영어 수업에 참가하도록 지시했다. 택시 운전사 자격 시험에도 영어가 필수 과목으로 채택됐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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