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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反 금병매] (4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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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오단계는 내가 금련에게 어르신을 소개하는 거예요. '바로 이분이 내게 옷감을 보내주신 고마운 분이다. 이분에게 내가 큰 은혜를 입고 있다'고 하면서 내가 어르신을 칭찬하면 어르신도 금련의 바느질 솜씨를 칭찬해주란 말이에요. 그런데도 금련이 아무 반응이 없으면 일은 끝난 거고 금련이 반응을 보이면 오단계도 성공한 거지요."

이런 식으로 왕노파가 서문경에게 열 단계까지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서문경이 듣고 보니 왕노파가 보통 중매쟁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멈은 능연각 공신들만큼이나 계략이 뛰어나구려."

능연각이란 당나라 수도 장안에 있는 사당으로 당태종이 개국공신 24명의 초상화를 걸어둔 곳이었다.

"과분한 말씀은 그만두시고 은 닷냥 하고 옷감이나 가지고 오세요."

"근데 말이오, 할멈에게 선금으로 은 닷냥을 주었는데 일이 열 단계까지 성공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끝나버리면 그 닷냥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서문경은 자기 입으로는 차마 돌려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슬쩍 왕노파의 의중을 떠보았다. 왕노파가 스스로 '그야 마땅히 돌려드려야지요' 하는 말을 하리라 기대하면서.

"벌써부터 일이 안 될 것을 생각하시나요? 일이 잘 될 것을 믿고 선금을 주는 거잖아요?"

"만약에 말이오, 일이 잘 안 되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거지요."

"일이 잘 안 될 것 같으면 처음부터 선금도 주지 말고 일도 맡기지 말아야지요."

왕노파도 서문경에게 말려들지 않으려고 계속 말을 돌리고 있었다. 결국 서문경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 말은, 일이 중간에서 어그러지면 선금을 돌려달라는 거요."

"그런 법은 없어요. 내가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노력을 하다가 일이 어그러졌는데 선금을 돌려주다니요? 그럼 처음부터 이 일을 맡지 않겠어요. 어르신이 다른 사람을 알아보세요."

왕노파가 표정을 바꾸며 찻잔을 치우기 시작했다. 서문경은 이 할멈은 도저히 당해내지 못하겠다 생각하며 어조를 부드럽게 하여 왕노파를 달랬다.

"아, 알았어요. 할멈이 하는 일이 실패할 리가 없겠지요. 나는 다만 만약에 실패하면 하고 가정을 해본 거지요. 이제는 그런 가정도 하지 않을 테니 할멈이 소신껏 밀고 나가도록 하오. 내 곧 은 닷냥 하고 할멈이 부탁한 옷감들을 인편에 보내겠소. 일은 오늘부터 진척시키는 거죠?"

"그래야겠지요. 하루라도 빨리 일을 진척시켜 나머지 은 닷냥도 받아내야죠. 어르신은 아무 염려 말고 사흘 후에 우리 집으로 오도록 해요."

왕노파도 어느새 표정을 부드럽게 지으며 찻잔에 화합차 물을 다시 채웠다.

서문경은 찻집을 나와 약속한 대로 은 닷냥과 옷감들을 사환인 대안을 시켜 왕노파에게 보냈다.

왕노파는 무대가 호떡을 팔러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금련을 찾아갔다. 금련이 왕노파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우리 집을 다 찾아오시고 웬일이세요? 할머니를 저는 늘 어머니처럼 여기고 있는데 이렇게 찾아와주시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자주 놀러 오세요. 너무 적적하단 말이에요."

"젊으신 부인이 이 늙은이에게 못 하는 소리가 없네요. 적적하기로 따지면 누가 더 적적하겠어요? 부인이 우리 집으로 자주 차를 마시러 와야죠. 내가 오늘 온 것은 달력을 좀 빌릴까 하고요. 옷을 지으려고 하는데 옷도 길일을 택하여 만들어야 우환이 없다면서요?"

"내가 길일 택하는 법을 조금 알고는 있지요. 근데 무슨 옷인데요?"

"수의요. 내 나이 늙어 언제 죽을지 모르니 윤달이 끼인 올해에 수의를 하나 장만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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