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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이슈] 미국 언론 "귀신 잡는 한국 해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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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 해병대전우회 서울연합회 회원들이 17일 밤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방범순찰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해병대(KMC:Korea Marine Corps)의 출발은 초라했다. 1949년 4월 15일, 해군에서 차출된 380명 병력이 경남 진해의 덕산 비행장 격납고에서 쓸쓸한 창설식을 했다. 일본군이 쓰던 99식 소총을 들고, 미 해군 수병이 건네준 중고 전투복을 입었다. 그러나 가혹한 훈련은 해병대원들을 강병으로 만들었다. '불가능은 없다'는 해병대 정신은 그렇게 시작됐다.

해병대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 계기는 한국전쟁이었다. '4.3 사태' 진압차 전 병력이 동원되는 바람에 제주도에서 6.25를 맞은 해병대는 군산.여수.마산 등지에 투입돼 큰 전과를 거두기 시작한다. 50년 8월 17일에는 해병대 1개 중대가 경남 통영 장평리 해안에 기습 상륙해 북한군 대대병력을 전멸시키고 통영을 탈환했다. 한국군 최초의 단독 상륙작전이었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마거릿 히긴스는 '귀신 잡는 해병(Ghost catching Marines)'이라고 보도했다. 해병대는 이어 인천상륙작전에서도 혁혁한 승리를 거뒀다.

서울탈환작전에 투입된 해병대는 50년 9월 27일 인민군의 탄환이 쏟아지는 가운데 중앙청으로 돌진해 태극기를 게양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서울 수복 뒤 '세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공훈'이란 내용의 표창장을 해병대에 전달했다.

51년 6월 4일부터 19일까지 난공불락이라 불리던 강원도 양구의 도솔산 일대 요새를 해병대 단독작전으로 모두 점령한 뒤 이승만 대통령은 '무적해병'이라는 친필 휘호를 하사했다.

명성은 베트남에도 이어졌다. 청룡부대는 65년 10월 해외파병 전투부대 1호로 베트남에 상륙한다. 6년4개월 동안 캄란지구에서 투이호아.추라이.호이안지구로 북상하며 임무를 완수했다.

특히 67년 2월 14일 짜빈동전투에서 청룡부대 1개 중대가 월맹군 2개 연대를 백병전 끝에 격퇴하자, 세계 주요 언론이 '신화를 남긴 해병(Legendary Marines)'이라고 대서특필했다.

이런 해병에도 시련기는 있었다. 국군합리화 정책에 따라 73년 10월 해병대 사령부가 해체됐다. 해군의 1개 참모부로 존재하다 전략적 가치가 재평가된 87년 11월에야 복원됐다.

해병대는 2025년까지 해병대를 '공중지상기동부대'로 재편한다는 '비전(vision) 2025'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해병대에 항공단과 정보대대를 새로 편성하는 게 핵심이다.

공지기동부대는 공중강습으로 적의 후방에 투입되는 부대를 의미한다. 상륙 장갑차로 해안을 엄습하는 동시에 헬기로 이동해 교두보를 확보하는 신속 투입 능력도 갖추겠다는 전략이다. '다목적 신속대응군'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게 해병대의 청사진이다.

이철희.채병건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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