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발로 감옥찾아 간뒤 또 탈출|트릭에 짐 싣는 일로 입에 풀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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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는 택시를 타고 아브딘궁으로 떠났다. 궁에 도착하자 바로 방명록이 있는 곳을 찾았다. 거기에다 이집트가 영국식민당국에 복종할 수 없다는 우리의 주장을 기록할 참이었다.

<왕궁 찾아가 항의>
나는 근무중인 왕실근위병에게 자이룬 감옥을 탈출한 「사다트」라고 나의 신분을 밝히고 방문목적은 「파루크」왕에게 불만을 털어 놓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깜짝 놀란 근위병은 상관에게 보고해야겠다며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근위명이 나가자마자 나는 방명록에 나의 이름과 주소를 적고 차분히 나의 주장을 기록했다. 근위병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는 「바드르」라는 국왕의 비밀경호원이었다.
내가 그에게 나의 글을 읽어보라고 했더니 이를 본 경호원은 깜짝 놀랐다. 우리는 그가 당황해하는 사이에 다른 택시 한대를 잡아 자이툰 감옥으로 되돌아 갔다.
교도관은 우리들이 되돌아온 것을 보고는 무척 기뻐했다. 그는 마치 자기가 우리를 찾아 잡아온 듯이 행동했다.
우리들은 심문을 받았다. 내무장관은 나를 자이툰 감옥에서 엘토르 감옥으로 이감시키도록 명령했다. 엘토르 감옥은 시나이반도에 위치해 있으며 잡범들을 수용하는 곳이었다. 나는 44년10월8일 그곳으로 이감되기로 되어있었다. 바로 그날 「파루크」왕은 내각을 해산시켰다. 나는 와프드당 내각의 붕괴소식을 듣고 구역질이 났다. 와프드당 내각은 치욕의 극이 아니었던가. 영국은 42년2월4일 「파루크」왕에게 영국의 꼭둑각시로 와프드내각을 임명하도록 압력을 넣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태변화로 나를 엘토르 감옥으로 이감시키려던 계획은 취소되었다. 신임수상은 와프드당 내각때 체포되었던 모든 정치범들을 석방했다. 그러나 나 혼자만은 석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영국의 요청에 따라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희망을 잃었다. 나는 이 다음엔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또 언제 풀려나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모든 음식과 물을 거부, 단식을 결행했다. 결국 나는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다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자이툰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날들은 슬픔과 불행의 나날이었다. 그것은 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당들의 부패가 만연되고 정치인들은 영국의 꼭두각시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42년2윌4일 이집트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았다. 영국대사는 탱크를 동원, 「파루크」왕의 궁전을 포위하고 내각을 바꾸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그로 부터 이집트에는 정치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왕·정당·주지사 등 어느 누구도 헌법을 준수하지 않았다.
한명의 강도가 정치를 조정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영국대사로 그가 정치를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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