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이란 대통령선거] 부동층 30% … 신정이냐 개혁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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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보수로의 회귀인가, 개혁이 지속될 것인가. 6800여만 명의 이란 국민이 17일 중요한 결정에 나선다. 핵 개발 의혹으로 국제적 압박이 높아지는 가운데 국내에선 연쇄 폭탄 테러가 발생하는 등 갈수록 혼란해지는 이란을 이끌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다.

◆ 개혁.보수 대격돌=범아랍 알아라비야 방송은 16일 제9대 이란 대통령 선거를 "이란 역사상 가장 뜨거운 선거"라고 표현했다. 현재의 신정(神政)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파와 정치.경제 개혁을 추진하려는 개혁파 간에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선 후보도 보수파 3명, 개혁파 3명, 중도파 1명이 팽팽한 3파전을 벌이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도 "4800여만 명의 이란 유권자가 3대 노선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며 "부동층이 30%를 넘어 결과는 예상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이란에선 만15세 이상이면 투표권을 갖는다.

현재는 중도파 실용 보수주의로 알려진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앞서 나가고 있다. 15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라프산자니 후보는 24~28%의 지지율로 2위 강경보수파 모하마드 칼라바프 전직 경찰총수를 10% 이상 앞지르고 있다.

라프산자니는 1989~97년 대통령을 지낸 정치 경험과 실용 노선을 평가받고 있다. 강경보수와 개혁파 간에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도자라는 것이다.

◆ 결선투표로 갈 듯=개혁파와 강경보수파 후보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개혁파의 무스타파 모인 전 문화.고등교육부 장관은 '하타미 대통령의 개혁정책 지속'이란 슬로건으로 젊은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강경보수파 칼라바프 후보의 당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하메네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하메네이는 지난주 "이란은 젊은 피를 필요로 한다"며 칼라바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17일 1차 선거에서 50% 이상을 득표한 후보가 없을 경우 일주일 뒤 최다 득표한 두 후보를 놓고 결선 투표를 한다. 두 후보는 결선 투표에서 승부수를 띄운다는 계획이다.

◆ 기로에선 이란=개혁.보수.중도 3파 중 어느 후보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이란의 향후 대외정책이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란의 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미국은 물론 아랍 정권들도 개혁파나 중도파 후보의 당선을 은근히 바라고 있다.

현재는 이란에서도 "이란이 직면하고 있는 국제적 고립과 경제제재를 극복하기 위해선 강경보수파가 대통령이 돼선 안 된다"는 여론이 높다. 지난해 2월 의회까지 장악한 보수파가 행정부마저 장악하면 이란의 개방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중도파 라프산자니와 개혁파 모인 후보는 이미 여러 차례 대미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도 강한 반미 감정 등으로 강경파 대통령을 원하는 여론도 적지 않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얼굴 페인팅에 청바지 등 파격 의상
여성들 '컬러풀' 선거운동

이슬람 신정국가 이란의 선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17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유세장에는 다양한 색깔의 포스터와 플래카드가 등장했다.

주요 도시에선 밤낮으로 차량 경적을 울리거나 지지 후보의 선전용 전단을 나누어 주는 젊은 선거 운동원들로 붐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선 젊은 여성들이 컬러풀한 옷을 입고 선거 운동에 대거 나선 점이 특징이다. 여성에 보수주의적인 아랍권에선 매우 드문 일이다. 여성들은 밤 늦게까지 테헤란 시내에서 지지 후보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얼굴에는 이란 국기를 페인팅한 여성들도 있다. 일부 여성운동원은 지지 후보의 이름이 쓰인 유니폼을 입는 열성도 보인다. 대부분 여성 운동원이 지지하는 후보는 실용 보수주의 진영의 라프산자니와 개혁파 무스타파 모인 전 고등교육부 장관이다.

개혁파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이 지난 8년 동안 추진해온 정치.사회 개혁작업이 계속돼야 한다는 바람에서다. 강경 보수파가 집권할 경우 여성 권리가 다시 위축될 것도 우려하고 있다. 모인 후보를 지지하는 여대생 파르자나(22)는 "우리는 이제야 청바지를 입고, 축구장도 갈 수 있게 됐다"며 "여성 해방을 포함해 전반적인 사회 개혁을 할 수 있는 모인 후보를 위해 뛰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혁 성향 후보들도 여성 운동원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란 인구 6800여만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25세 이하고, 이란 대학생의 60%가 여학생들이기 때문이다. 범아랍 일간 알하야트는 16일 "이번 선거는 중년 남성의 지지를 받는 보수세력과 투표율이 높은 젊은 여성들 간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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