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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중앙당서 독립 … 상임위원장이 당 움직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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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중앙당의 공천권을 뺏고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꿔 사생결단식의 당론 정치를 막아야 국회 중심의 정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박관용(76·6선) 전 국회의장은 “당론 정치는 정당 간 투쟁의 역사와 보스 중심 정치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중앙당이 국회를 운영하는데 국회를 중앙당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며 “중앙당의 공천권을 빼앗아야 하고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만들어 사생결단식 싸움 정치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6선 의원을 지낸 박 전 의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한나라당 부총재 등 36년간 현장 정치를 경험했다. 2004년 5월 국회의장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뒤 사단법인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NDI) 이사장을 맡아 국가 발전을 위한 정책 과제를 연구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반포동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당론 정치에는 어떤 문제가 있나.

 “당론은 정당이 갖고 있는 정체성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당은 정책개발 능력이 없었다. 우리 정당사는 정당 간 투쟁의 역사다. 독재·군부 권력과 민주세력의 ‘민주 대 반민주’ 대결만 있었다. 또한 우리 정당은 명사(名士) 중심의 정치였다. 이승만·박정희·김영삼·김대중을 떠받들기 위한 정당이어서 보스의 얘기가 이념이고 정책이었다. 상대를 권력으로부터 쫓아내려는 정책만 있었다. 당론을 놓고 서로 토론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식이다. 그래서 이 나라 정치가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 공무원연금처럼 꼭 필요한 개혁을 하려면 당론이 필요하지 않나.

 “그럴 때는 공동의 책임으로 이겨내야 한다. 힘을 합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정부가 여야와 대화를 자주, 많이 해야 한다.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선거의 승자는 정치의 승자가 아니다. 승자와 패자가 논의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국가 운영의 표본이다. 광우병 파동 때도 세월호 사건 때도 국론 통일이 안 됐다. 이는 지도자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정당의 책임이다.”

 - 당론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국회의원이 국회를 운영해야 한다. 첫째 할 일이 공천권을 중앙당에서 빼앗아야 한다. 그리고 선거구를 크게 만들어야 한다. 소선구제에선 한 명만 당선되니까 지지층의 입맛에 맞는 얘기만 한다. 학자들은 오픈 프라이머리(개방형 국민경선제) 주장을 많이 한다. 그런데 정치가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해 자발적인 참여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후보를 뽑기 위해 직접투표를 한다면 누가 사람을 많이 동원하느냐의 경쟁이 된다. 그건 돈을 누가 많이 쓰느냐의 게임이 된다는 의미다.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을 많이 확보해 그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 진성 당원 명단은 지구당(당협위원회)이 아닌 중앙당에서 관리해야 한다. 사전에 알리지 않고 당원 명단에서 투표자를 무작위로 뽑아야 대표성을 갖는다.”

 - 한국 정치가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가 뭔가 달라지려면 국민이 정치권에 압박을 가하는 방법밖에 없다. 건전한 시민단체나 정치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이 새로운 정치를 갈망해야 한다. 그런데도 안 바뀌면 새로운 정당이 나올 수 있다. 지금 정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7선을 지낸 조순형 전 의원은 “당론 정치를 깨려면 국회 상임위원장이 당을 움직여야 한다. 임기를 4년으로 늘리고 연임을 보장해 권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종택 기자

조순형(79·7선) 전 의원은 ‘미스터 쓴소리’란 별명을 가진 자타가 공인하는 의회주의자다. 당론보다는 소신과 원칙을 우선하며 붙은 별명이다. 현역 의원 시절 국회 도서관을 자주 찾은 의원으로도 이름이 나 있다. 지난 2월 국회 도서관 개관 60주년 기념 최우수 이용 의원으로 선정됐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 경남지사는 국회 법사위원 시절 “투표로 하면 조 의원이 늘 법사위원장에 당선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론’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고 청하자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당론과 관련된 헌법과 국회법은 물론 각 정당의 강령 등을 복사해 온 그는 “소수가 지배하는 당론은 위헌적 요소가 있고, 의회의 기능도 왜곡한다”고 우려했다.

 - 당론과 의원의 소신이 배치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이미 입법적으로 해결돼 있다. 헌법 46조 2항(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과 국회법 제114조 2항(의원은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를 보시라. 사실 의원 대부분이 국회법도 잘 안 본다. 그게 문제다.”

 - 국회 선진화법까지 제정됐는데도 국회 파행은 여전하다.

 “당론에 막혀서다. 국회 선진화법이 기능을 발휘하려면 여야 교차투표(크로스보팅)가 전제돼야 한다. 5분의 3이 찬성해야 법안이 통과되는데 소수 야당이 당론으로 막으면 그만 아닌가. 이명박 정부 때 세종시수정안이 대표적이다. 하물며 여소야대라면 어떻게 되겠나. 그런 대비 없이 국회 선진화법을 통과시킨 건 무책임했다.”

 - 강경한 소수가 당론을 주도해 생긴 문제도 많다.

 “나도 많이 겪었다. 의총에서 당론을 정할 때, 때때로 다른 생각이 있어도 침묵한다. 그럼 몇몇이 작정하고 들어와 분위기를 지배하고, 곧 당론이 된다. 지금 야당이 그런 경향이 짙다. 당론이 형성되는 과정은 공개돼야 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운동권 체질의 일부 강경파 인사가 중심이 돼 그런 문화를 만들고 있다.”

 -과거 3김 시대에는 어땠나.

 “김대중·김영삼 같은 지도자는 워낙 카리스마가 강했고, 당시 상황은 직선제 쟁취 등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다 보니 그분들의 뜻이 당론이었다.”

 - 당론에 반대한 적이 있나.

 “많다(웃음). 예를 들면 1999년 김대중 정부에서 옷 로비사건이 있었을 때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특검법을 요구했다. 김영삼 정부 때 야당이던 우리가 요구했던 법이다. 그런데 여야가 바뀌었다고, 이번엔 우리가 당론으로 거부했다. 당시 난 법사위원이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 당론에 막힌 국회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국회의장이 명예직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의사일정을 책임지고 분위기를 주도해야 한다. 또 국회 각 상임위원장이 중요하다. 당을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은 당론에 충실한 집행자 역할에 그친다. 상임위원장의 임기를 4년으로 늘리고 연임도 보장해 권위를 높여야 한다. 의원 개개인도 헌법기관으로서의 자존심과 명예를 자각해야 한다.“

특별취재팀=권호·유성운·허진·정종문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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