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 부시, 일본 관련 무슨 얘기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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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노무현 대통령은 11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대일 현안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노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오전 회담을 마친 뒤 오찬장으로 이동해 1시간5분간 오찬 회담을 했다. 주요 주제는 동북아 정세와 남북 관계였다. 하지만 회담 시간의 상당 부분을 대일 관계에 대한 설명에 할애했다고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이 14일 전했다.

화두는 부시 대통령이 먼저 꺼냈다. 부시 대통령이 자리에 앉자마자 "일본과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물었다는 것. 이에 노 대통령은 세 가지를 얘기했다고 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하지 말아야 하고▶과거사에 대한 왜곡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되며▶무엇보다 독도 문제를 가지고 더 이상 논란을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 등이다.

노 대통령은 "우리는 한.일 간의 미래를 문제삼는 게 아니다. 단지 일본이 과거 문제에 대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부시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에게도 저에게 말한 것처럼 솔직하게 얘기해 봤느냐"고 물었고, 노 대통령은 "아직 그런 적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한 번 그렇게 얘기해 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한.일 두 정상이 마주앉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 볼 것을 권유했다는 후문이다.

조금 뒤 부시 대통령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고이즈미 총리와 노 대통령의 설명이 조금 다른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곧바로 "고이즈미 총리와 내가 배운 역사 교과서의 콘텐트(내용)가 서로 다른가 보죠"라고 답해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노 대통령이 이같이 답변한 뒤 부시 대통령은 더 이상 한.일 관계에 대해 묻지 않았다"고 전했다.

대신 부시 대통령은 옆에 앉아 있던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가리키며 "라이스 장관은 나보다 더 합리적인 사람인데, 럼즈펠드 장관보다는 내가 더 합리적"이라고 말해 또 한 번의 폭소를 자아냈다고 이 소식통은 밝혔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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