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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돌아온 김우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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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마침내 돌아왔다. 대우사태 이후 고국을 떠나 해외 유랑생활을 한 지 5년8개월 만이다. 그는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2001년 3월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5월 기소중지 결정을 내린 검찰의 수사를 받기 위해 대검으로 향했다.

김 전 회장은 우리에게 너무나 선명한 두 얼굴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하나는 열성적인 기업가로서 한때 한국경제호(號)의 선장 역할을 했던 이미지다. 대우그룹은 삼성.현대.LG.SK그룹 등에 비해 후발 주자로 재계에 등장한 이래 경이적인 속도로 성장을 지속해 그룹 해체 직전인 1999년 4월 발표된 공정위 대규모 기업집단 순위에서 삼성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김 전 회장은 전경련 수장으로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김 전 회장의 '500억 달러 무역흑자론' '세계경영론'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었던가.

동시에 김 전 회장은 기업 부실의 원흉이라는 또 하나의 얼굴을 하고 있다. 끊임없는 확장 추구의 결과 대우그룹의 부채 규모는 99년 당시 68조원으로 97년 위기를 맞은 기아그룹 부채의 7배에 이르렀다. 외형 성장과 차입경영으로 대표되는 한국 기업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002년 11월 대법원 판결에서 대우그룹은 41조원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한 것으로 발표됐다. 이로 인해 대우그룹 전직 임원들에게는 23조원의 추징금과 징역형이 부과됐다. 대우그룹의 몰락이 국가경제나 국민생활에 미친 파장은 또 얼마나 컸던가.

김 전 회장의 사법 처리 수위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국정 조사, 제2의 대선자금 수사로 이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사법 처리를 거쳐 사면하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병보석을 하게 되리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김 전 회장은 실정법 위반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김 전 회장은 거액의 분식회계와 그에 따른 불법 대출 및 해외자금 도피 등 혐의로 수배를 받아왔다. 공금 유용이나 뇌물 제공의 죄목도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 각종 민사소송에도 연루돼 있다. 공과를 따지기 전에 대우사태로 인한 충격이 너무 크다. 올해 집단소송제가 시행되고 있는 만큼 김 전 회장을 처벌하지 않게 되면 두고두고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6년 가까이 지나 불을 끄는 마당에 더 이상 불씨를 남겨둬서는 안 된다. 불법 행위의 지시자로서 김 전 회장이 최종책임을 짐으로써 문제를 털고가야만 하는 것이다.

사법 처리 및 확정판결 이후 김 전 회장은 실형 등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김 전 회장은 5년8개월 동안 감옥에 있는 것보다 훨씬 심한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감옥에 갔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수없이 했음직하다. 이미 상당한 죗값을 치렀다고 인정하고 약간의 기간이 지난 뒤 김 전 회장에게, 돌아온 고국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어떨까?

김 전 회장이 가지고 있는 정보망이나 인적 네트워크는 매우 값진 자산이다. 글로벌한 사업 전개가 요구되고 있는 현실에서 김 전 회장이 죗값을 대신해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로 하여금 다시 한번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한 경영에 대한 도덕적.사법적 책임이 우선이다. '경영판단의 원칙'에 의해 경영상 부적절한 결정이나 행위가 이뤄졌다 해도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경영진에 법률상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복잡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대기업의 경우 기업을 유지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오는 폐해는 엄청나다. 자본의 수탁자로서, 부채의 변제자로서 경영자는 막강한 권한과 함께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김우중 사건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이기도 하다.

김용열 홍익대 상경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