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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죽을 땐 현명한 사람 돼 죽고, 살 때는 미친 듯 살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라 만차의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1863년 귀스타브 도레 작품)

존 F 케네디(1917~63)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일컬어 “환상은 없는 이상주의자(an idealist without illusions)”라고 했다. 하지만 환상 없이 이상을 추구할 수 있을까. 혹자는 “통일은 현실로 접근해야지 환상이 끼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환상 없이도 통일을 성취할 수 있을까. 결혼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환상 없이 결혼할 수 없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알아 버린(?)’ 사람들은 결혼할 수 없다. 통일에도 결혼에도 ‘대박’이라는 꼬심의 울림이 있어야 구미가 당기는 법이다.

여자 돈키호테로 불린 『마담 보바리
돈키호테는 세상의 모든 환상을 대표한다. ‘그는 돈키호테 기질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한국어를 비롯해 세계 모든 주요 언어에서 뜻이 통한다. 그만큼 『돈키호테』의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1547~1616)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불행히도 세르반테스는 평생 가난했다. 『돈키호테』가 베스트셀러가 돼 인쇄를 거듭하게 된 다음에도 가난했다.

시계 방향으로 『돈키호테』의 한글판(시공사·2004), 영문판(하퍼콜린스·2003), 스페인어 초판(1605).

‘부귀영화 누릴래 아니면 불멸의 이름을 후세에 남길래’라고 누가 물어보는데 ‘이름을 남기겠다’는 사람들에겐 세르반테스가 아이콘이다. 『돈키호테』에서 세르반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재물보다는 훌륭한 이름으로 기억되는 게 낫다.”

『돈키호테』는 세계 최초의 근대적 소설이다. 세계 최고의 소설이라고도 평가된다. 2002년, 문학청년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 시대의 대문호 100명이 투표한 결과 세르반테스가 일등이었다. 세르반테스가 호메로스나 셰익스피어나 괴테나 단테보다도 위대하다는 것이다. 체코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세르반테스와 데카르트는 근대의 공동 부모다”고 했다. 아무리 양보해도 『돈키호테』는 최소한 스페인 문학의 백미다. 세계 문학사에 미친 영향도 지대하다. 『마담 보바리』는 ‘여자 돈키호테’라고 불린다. 할리우드의 로드무비에도 끝없이 영감을 주는 책이다.

2005년은 『돈키호테』 400주년이었다. 400주년을 맞아 10권으로 된 세르반테스 백과사전도 나왔다. 한데 2015년도 400주년이라고 할 수 있다. 1부가 나온 게 1605년, 2부가 나온 게 1615년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1부로 끝날 수도 있었으나 허락도 없이 속편이 나돌았기 때문에 2부를 썼다.

사는 데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웃음이 필요하다. 사회가 됐든지 뭐가 됐든지 뭔가를 비꼼이 필요하다. 모험을 찾아 떠남도 필요하다. 『돈키호테』는 웃음과 비꼼과 모험을 준다. 이 세 가지만으로도 많은 위로와 힐링이 되지 않을까.

책을 미치도록 읽으면 실제로 미칠까. 기사도 로맨스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정신이 나가 버린 50세 가까운 돈키호테는, 모험을 찾아 세상을 주유하는 방랑기사(knight errant)가 되기로 작정한다. 집에 보이는 금속을 뜯어 갑옷을 만든다. 기사에게 이상적인 여인이 없으면 안 되는 법. 둘시네아를 마음에 품는다. 이도령에게 방자가 있듯, 기사에게는 종자(從者)가 있어야 하는 법. 농부 출신 산초 판사를 종자로 임명한다. 나름 영악한 산초다. 이상하게도 ‘섬 하나를 주겠다’는 말에 속아 돈키호테를 따라나선다. 비록 소설 속 가상인물이지만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남길 운명이었나 보다. 말 이름은 로시난테다. 돈키호테는 이상주의자, 산초는 현실주의자를 상징한다. 오래 같이 살면서 닮아 가는 부부처럼, 이 둘은 새로 배우고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유하는 게 많아진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 온갖 고초 끝에 돈키호테는 제정신이 돌아온다. 고향으로 돌아와 죽는다. 『돈키호테』에 나오는 돈키호테의 묘비명은 이것이다. “죽을 땐 현명한 사람 돼 죽고, 살 때는 미친 듯이 살라(Morir cuerdo, y vivir loco).”

자신의 꿈을 세상에 맞추는 게 살기 편하다. 돈키호테는 세상을 자신의 꿈에 맞춘다. 산초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40개의 풍차가 그에겐 40명의 사악한 거인으로 보인다. 돈키호테에게 여관은 성(城), 양떼는 곧 전투를 벌이려는 두 진영으로 보인다.

과감할 때는 과감하게, 신중할 때는 신중하게 살아야 한다. 지금 당장 뭔가를 하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떠넘기고 기다릴 때도 필요하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이렇게 말한다. “뭔가 연기시키면 항상 위기가 싹튼다.”

“죽음 빼놓곤 모든 문제에 해결책 있다”
『돈키호테』에 미친 사람들은 『돈키호테』가 책 중에서도 가장 마법 같은 책이라고 한다. “죽음 빼놓고는 모든 문제에 해결책이 있다”는 세르반테스의 낙천주의에도 흠뻑 빠진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혹자는 『돈키호테』의 인물이나 배경 묘사가 세련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산만하다, 문체가 일관성이 없다, 반복이 심하다…. 따분하다는 사람도 있다. 17세기에는 낄낄거리며 읽는 책이었지만 유머 패턴이 달라진 21세기에는 안 통한다는 것이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가 길가에서 책을 들고 울고 웃는 사람을 보고 “미친 게 아니라면 『돈키오테』를 읽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세르반테스는 가난한 약제상 겸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대 유명한 휴머니스트인 후안 로페스 데 오요스(1511~1583)에게 교육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세르반테스는 노예로 팔려 가고, 사기를 당하고, 감옥에 가고, 결혼은 실패로 끝나고, 교회로부터는 파문당하기도 하는 등 험난한 인생 파고 속에 살았다. 레판토 해전(1571년)에 참전했을 때 총탄을 맞아 왼손을 평생 못 쓰게 됐다. 관직에 나서려고 했으나 종종 좌절했다. 그의 조상이 유대계이기 때문에 그랬다는 설이 있다. 공무원이 된 다음에도 일이 틀어졌다.

“재물과 영광의 길은 문학 아니면 전쟁에 있다”고 말한 세르반테스는 30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인·극작가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돈키호테』는 역사와 기사도에 대한 세르반테스의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집필됐다.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가 60이 다 된 나이에 쓴 인생의 마지막 ‘패자부활전’ 승부수였다. 결국 『돈키호테』 이 한 권으로 그는 좌절과 실패로 점철된, 한 많은 인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세르반테스는 셰익스피어 사망 열흘 후에 세상을 떴다.

『돈키호테』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다(그렇게 주장되는 책이 『돈키호테』말고도 10권은 더 있지만···). 『돈키호테』 속에는 ‘이상과 현실’ ‘겉모습과 속모습’ ‘진리는 어떻게 발견될 수 있는가’ 같은 심오한 철학적 문제가 숨어 있다는 설도 있지만 세르반테스의 의도는 그저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는 설도 유력하다.

사실 『돈키호테』는 아주 다양한 독자들의 ‘바이블’이다. 미국 소설가 윌리엄 포크너(1897~1962)는 돈키호테를 1년에 한 번씩 읽었다. 스페인 전 총리 펠리페 곤살레스는 “매일 읽는다”고 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돈키호테』 원전을 읽기 위해 스페인어를 공부했다. 처음에는 단지 소설이 재미있어서 읽었는데, 나중에는 『돈키호테』에서 학술적 영감을 얻었다. 라틴아메리카 독립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역사에서 3대 바보는 예수, 돈키호테 그리고 나다”고 주장했다. 체 게바라(1928~1967)가 남긴 서신을 보면 게바라는 질세라 자신이 이 시대의 돈키호테라고 생각했다. 한때 멕시코에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운동을 이끌었던 ‘마르코스 부사령관’은 『돈키호테』를 “최고의 정치이론서”라고 평했다.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인용해 유명해진 “배고픈 존재로 남아라. 바보스러운 존재로 남아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을 늘리고 늘리면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의 전기가 되지 않을까. 669명의 인물, 46만 단어로 된 방대한 소설이다. 마음 잡고 읽으면 48시간 정도 걸리는 분량이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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