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성과 야성 섹시함과 유머의 결정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미남 배우들 결혼소식에 술렁이는 여자들을 비웃어 왔지만 조지 클루니 장가 간다는 소식에는 나도 마음이 쓰렸다. ‘세계 최고의 엑스(ex-) 보이프렌드’니 ‘가장 섹시한 남자’같은 명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남자라면 조니 뎁도 있고 브래드 피트도 있다. 하지만 그런 배우들을 거쳐 조지 클루니가 나만의 조지 클루니가 된 건 나만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12년 전 ‘오션스 일레븐’의 영화홍보 인터뷰 때였다. 할리우드 통신원으로 일하던 때라 영화 프리미어 행사에 종종 참가했다. 그런데 그날 LA에서 제일 큰 호텔의 스위트룸에 들어가 보니 ㄷ자로 놓인 소파에 감독과 출연진들이 빙 둘러 앉아 있는 것이었다. 눈에서 지성의 레이저를 쏘는 듯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흰 양복에 흰 구두까지 신고 시가를 척 물며 폼 잡고 있는 앤디 가르시아, 왠지 기자들은 귀찮다는 표정을 짓는 매트 데이먼 등으로 둘러싸인 한쪽 소파에 기자 셋이 앉았다. 살짝 보니 백전노장 할리우드 기자들도 덜덜 떨고 있는 게 보였다. 내 자리는 ㄷ자로 연결되어 조지 클루니와 잘하면 무릎이 닿을락 말락하는 자리였다. 그렇다. 그게 다다. 나는 그와 무릎이 맞닿을 뻔했던 사이다.

하지만 그 남자의 매력은 무릎이 다가 아니었다. 바짝 얼어붙은 기자들을 위해 그가 쏟아낸 과장된 너털웃음과 자학개그, 유머에 묻어났던 진정한 배려심을 잊을 수가 없다. 스타의 무게감을 뿜어내는 사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너무 떨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게 천추의 한이다.

하지만 소문대로 그가 대선에 나가 미국 대통령이라도 된다면 나는 그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 그의 부드러운 배려를 받으며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었노라고, 내가 촌뜨기 티 나는 동양 기자만 아니었더라도 그 짧은 시간에 잠깐이라도 서로 반하지 않았겠느냐고 구라로 점철된 판타지 소설이라도 쓰며 내 인생 최고의 취재원이었던 그를 그리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세계 여성의 연인이 돼버린 그에게서 완벽남의 조건을 생각한다. 그는 우선 자신의 분야에서 아카데미 상(남우 조연상, 각본상)을 받을 정도의 실력이 있다. 그러나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으로서 섹시한 매력을 뽐내다가도 감독으로서는 미국의 1950년대 빨갱이 사냥 매카시즘의 광풍을 고발하고 바보 상자가 되는 TV를 비판하는 지성미를 갖추고 있다. 동시에 상업영화로서 벌어들인 돈을 인디펜던트 영화 제작에 쏟아붓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영화인이다.

줄리아 로버츠의 이혼에 원인이 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땐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결혼을 파탄 내느라 시간이 없었다”고 말하고 수단 대사관 앞에서 반전 시위를 하다 잡혀가면서도 “내 이름은 브래드 피트”라고 지껄이는 여유와 유머를 장착한 그다.

하지만 약혼자의 집안이 극단주의 이슬람 교도라는 타블로이드 보도에 “내 약혼녀가 임신을 했다고 써도 아무 말 않겠다. 다만 종교에 대한 무지는 참을 수 없다”며 일침을 가하는 뚝심은 어떤가. 뿐만 아니다. 세계적인 헤지펀드 투자자인 댄 롭이 소니 영화사가 큰 영화로 수익을 못 올린다며 분사 운운하자 “웬 뜨네기가 영화도 모르면서 큰 소리냐”며 독설을 날리는 호기마저 빛난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용기는 아프리카 수단 다르푸르 지역의 분쟁으로 희생되는 생명을 위해 직접 전장으로 날아가 이들을 위해 다큐멘터리를 찍고 인공위성으로 화면을 찍어 고발하는 사회운동가로서의 모습을 보일 때다.

말하자면 이 남자는 그것이 상업주의든 자본주의든 자신이 속한 시스템을 인정하고 최선을 다해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걸 걸고 내던질 줄 아는 남자다. 할리우드의 초호화 파티장과 아프리카의 전쟁통 그리고 시위장을 자유롭게 오가는 이 지성과 야성은 더할 나위 없이 섹시하다.

그러니 그가 열일곱 살이나 어린, 지성과 미모와 날씬함과 부까지 겸비한 최고의 인권변호사와 마침내 결혼했다고 하더라도 아쉽지만 할말이 없지 않겠나. 물론 그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라고 간절히 원하는 일은 차마 진심으로 하지 못할지라도.

이윤정 칼럼니스트.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대중문화와 미디어에 관한 비평 활동을 하고 있으며 중앙SUNDAY와 창간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