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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근의 시대공감] 국민 위한 개헌, 그 네 가지 원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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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호 31면

최근 국가개조 차원에서 조속히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강하게 일고 있다. 제19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자문기관인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올 5월 23일 이미 상당한 수준의 헌법개정안을 의장에게 보고한 바 있다. 현재 여야 국회의원 155명으로 구성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도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국회에서 개헌특위(헌특) 구성 방안이 본격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한편에는 경제 살리기에 ’올인’ 해야 할 시점에서 개헌은 모든 사안의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시기상조론이 버티고 있다. 2000년부터 개헌을 주장했고 대선 공약으로 4년 중임제를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은 올 들어 개헌 반대론을 펴고 있다. 개헌 논의가 앞으로 어떻게 정리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개헌을 논의하고 추진할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정치권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개헌이 되어야 한다. 개헌은 철저히 국민의 입장에서 추진돼야 한다. 개헌이 국민여론의 공감 없이 정치적 유불리나 정략적·당파적 차원에서 논의돼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2007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대통령 중임제로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으나 무산된 적이 있다. 권력구조 부분은 유력 대선주자의 이해관계와 맞물리면 개헌이 어렵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헌법을… 개정한다.” 27년 전인 1987년 10월 29일 공포된 현행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의 일부다. 학창시절 헌법을 처음 배울 때 주어가 왜 ‘우리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리 대한국민’인지 의아스러웠다. 헌법 개정은 바로 ‘우리 대한국민’이 하는 것이다. ‘대한국민’이 헌법 전문의 주어가 된 이유를 잊어버리고 추진하는 개헌은 성공할 수 없다. 언제 개헌을 할 것인가도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 헌법개정의 권력은 국민에게 있기에 향후 국민여론의 향배에 따라 정할 문제다.

둘째, 개헌은 정부의 협조하에 국회가 여야 합의로 해야 한다. 헌법상 국민의 대표인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와 대통령에게 개헌 발의권이 있다. 대통령이 반대한다고 해도 국회의 개헌 발의를 막을 수 없다. 국민여론이 개헌에 적극적인 이상 어느 시점에 가서는 대통령도 ‘나는 국회의 개헌 논의를 반대한다’거나 ‘나는 안 하겠으니 국회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보다는 ‘나도 돕겠다’는 자세로 돌아서야 한다. 정부도 ‘헌법연구반’을 가동해 국회를 적극 도와야 한다. 헌특에서 여야 갈등이 첨예화하는 것을 막고 합의개헌을 성사시키기 위해 87년 개헌 과정에서처럼 여야 동수의 ‘8인 정치회담’을 가동하면 효율적일 것이다.

셋째,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대폭 확충하는 개헌이어야 한다. 헌법은 크게 기본권 부분과 통치구조 부분으로 나뉜다. 개헌은 기본권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헌법의 인권 부분은 손 볼 것이 많다. 국제적 인권 보장 수준과 선진 외국의 헌법에 맞게 최신의 것으로 다듬어야 한다. 국내외 헌법재판기관이 정립한 인권에 관한 판례도 반영해야 한다. 기본권 확대야말로 개헌을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다. 기본권 분야는 헌법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면 된다.

넷째, 권력구조 부분은 급격한 변화를 피하고 현 제도의 보완·개선에 그쳐야 한다.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켜 바람직한 정부 형태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의원내각제로 바꾸려면 극심한 의견대립이 야기될 공산이 크다. 국민이 직선제 대통령을 선호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단임의 폐해를 극복하고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자는 데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4년 중임 대통령제나 직선 대통령은 외교·안보·국방·통일을, 국회 선출 총리는 내치를 맡는 혼합제로 가는 정도의 보완만 해야 한다.

헌법도 시대정신의 변화에 맞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물론 시장경제와 법치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헌법의 뼈대는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몇 가지 쟁점에 대한 여야 합의가 원만히 이루어지면 개헌은 절차적으로는 그리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개헌론이 추진 동력을 얻을지, 아니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인지는 이제 전적으로 헌법 개정권자인 국민의 뜻에 달려 있다. 먼저 개헌의 주요 쟁점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여론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헌법은 국민통합의 상징이다. 국민과 국회와 정부 모두가 동의하는 개헌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황정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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