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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가뭄에도 풍년 들게 할 유전자 지도와 유전자 가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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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7호 25면

보통 땅콩 잎(왼쪽)은 해충 애벌레의 먹잇감이다. 세균의 살충(殺蟲) 유전자가 첨가된 잎(오른쪽)을 먹은 벌레는 결국 죽고 만다(미국 농무부 자료).

“소년 잭은 소를 팔러 시장에 나갔다가 소 값 대신 콩을 얻어왔습니다. 마당에 떨어진 콩은 순식간에 하늘까지 닿았습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간 잭은 하늘에서 황금알을 낳는 닭과 하프를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성난 거인이 쫓아 내려오자 잭은 도끼로 콩나무를 자르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30> 수퍼 쌀

영국 동화 ‘잭과 콩나무’의 줄거리다. 잭의 ‘마술 콩’이 쑥쑥 자라는 것으로 봐 아마도 세계 최초의 ‘유전자 변형 식물(GM식물·Genetically Modified)’일 것이란 필자의 실없는 농담에 강의실이 일순 썰렁해진다. 세상 콩의 81%가 GM 콩인데 GM 콩은 지구의 식량난을 해결하는 ‘황금알을 낳는 닭’일까? 아니면 괴물 식물을 만들어내는 ‘무서운 거인’일까?

2012년 9월 ‘미국 식품독성학회’지에 주목할 만한 논문이 한 편 실렸다. 논문은 제초제에 견디는 유전자를 삽입한 GM 옥수수(NK603)가 쥐의 간·신장을 손상시키고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었다. 연구가 진행된 프랑스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순식간에 논란에 휩싸였다. 논문 발표 후 프랑스 정부기관과 유럽식품안전청(EFSA)에선 두 차례의 검토 결과 실험 쥐의 숫자가 너무 적은 데다 유독 암에 잘 걸리는 종(種)의 쥐를 실험에 사용한 사실 등 실험 방법의 부정확성을 지적하며 논문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논문은 결국 이듬해 11월 철회됐다.

국내 수입 콩의 70%가 GM 콩이다. 이들 중 대부분이 사료나 가공용으로만 사용된다고 하지만 가끔씩 터져나오는 안전성 관련 뉴스가 소비자들을 찜찜하게 한다. 콩엔 없던 세균의 ‘농약 저항성’ 유전자를 콩에 집어넣으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며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식물을 육종(育種)하는 방법이 없을까?

GM 식품 안전성 논란 핵심은 외부 유전자
필자의 유학시절인 1990년에 방문한 미국 몬산토 연구소는 온통 온실 천지였다. 농약을 주로 합성했던 화학실험실에서 식물연구실로 변신한 것이다. 당시 몬산토 연구소는 제초제인 ‘라운드업’에 잘 견디는 유전자를 박테리아(세균)에서 분리한 뒤 이를 옥수수 유전자에 끼워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온실은 이렇게 만든 GM 옥수수가 실제로 어떻게 자라는지를 관찰하기 위한 장소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GM 옥수수·GM 콩은 1996년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세계의 재배면적은 100배나 늘어 현재 전체 콩의 81%, 옥수수의 35%가 GM 씨앗으로 재배되고 있다. 제초제 저항성인 GM 옥수수·GM 콩은 콩·옥수수의 수확량을 늘리는 데 일조했다. 제초제를 뿌려도 GM 식물은 죽지 않고 잡초만 죽기 때문이다. 이른바 제1세대 GM 식물들은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GM식품에 대한 찬반은 개발 초기부터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구 식량난 해결책이란 찬성 측 주장과 종자 독점, 생태계 혼란 우려 등 반대 측 의견이 아직도 팽팽하다. 상품화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일반인들에게 ‘안전한 식량기술’로 인정되기엔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GM 식물, 특히 식품의 경우 우려의 핵심은 원래 식물엔 없던, 즉 다른 종(種)의 유전자를 집어넣었다는 것이다. 다른 종의 유전자와 단백질이 콩에 삽입된다 하더라도 사람의 위(胃)에서 대부분 분해돼 별 영향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수백, 수천 년을 먹어온 전통식품처럼 안전하다는 확신을 소비자에게 100% 심어줄 만한 연구결과와 데이터가 나와야 일반인들은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외부 유전자를 삽입하지 않고 좀 더 ‘자연스러운’ 식물 개량 방안은 없을까?

비타민 A가 풍부한 ‘황금쌀’엔 수선화와 옥수수의 유전자가 들어갔다. 황금쌀을 필두로 과학자들은 식물 고유의 독특한 성질을 이용해 작물을 개량하는 방법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내뿜는 ‘화학무기’
요즘 동네 목욕탕에선 ‘희노끼’라 불리는 편백나무 욕조가 인기다. 편백나무의 상쾌한 향이 숨을 탁 트이게 해서다. 이 향기는 침엽수가 즐비한 산 속에서도 맡을 수 있다. 건강에 이롭다는 이 향기, 즉 ‘피톤치드(Phyton-cide)’ 때문에 삼림욕을 하는 사람이 많다. 비록 피톤치드란 전문 용어는 몰랐겠지만 우리 조상들도 바람을 쐬면 건강이 좋아진다고 생각해 호젓한 산 속에서 옷을 벗고 누워 풍욕(風浴)을 즐겼다. 요즘도 산 속에서 담요 하나만 둘러쓰고 명상을 하는 건강요법이 인기다. 피톤치드는 좋은 향수가 아니라 사실은 식물(phyton)이 내뿜는 항균물질(cide)이다. 알려진 5000종의 피톤치드는 모두 식물이 보유한 ‘화학무기’다. 피톤치드는 잎을 갉아먹는 곤충이나 곰팡이를 공격한다. 이 화학무기 중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퍼지능형 무기’가 있다.

진딧물처럼 떼로 움직이는 곤충 사이의 소통은 ‘곤충 페르몬’이란 냄새 물질을 통해 이뤄진다. 이 중 ‘경보 페르몬’은 주위에 적이 나타났을 때 전파되는 ‘튀어!’란 경보 사이렌이다. 식물은 이렇게 소통하는 진딧물에게 세 가지 화학무기를 내뿜는다. 하나는 진딧물의 경보 페르몬과 똑같은 물질이다. 이 냄새를 맡은 진딧물들은 진짜 적이 나타난 줄 알고 동시에 떼로 도망친다. 두 번째 무기는 진딧물의 천적인 말벌을 부르는 천적 호출 물질이다. 말벌은 진딧물의 애벌레에 침을 꽂고 그곳에 자신의 알을 낳아 진딧물을 몰살시킨다. 세 번째 무기는 마취 물질이다. 식물은 진딧물의 애벌레를 마취시켜 말벌이 쉽게 침을 꽂도록 돕는다.

이런 식물의 전략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손 안 대고 코 풀기’다. 이런 식물무기를 이용하면 진딧물을 죽이기 위해 살충제를 사용하거나 굳이 살충유전자를 삽입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식물 A에 있던 이런 방어물질 생산 유전자를 식물 B에 삽입해 진딧물 제거 효과를 확인한 연구결과가 있다. 이 살충 유전자는 원래 식물이 갖고 있던 것이어서 박테리아(세균)에서 얻은 유전자를 식물에 끼워넣었을 때 혹시 있을지 모르는 위험성 걱정을 경감시킬 수 있다. 이처럼 식물이 원래 갖고 있던 고유의 능력을 개량·증폭시켜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것이 다음 세대 식물 개량의 연구 방향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방법을 이용해 식물 속에서 우수한 종자를 골라왔다. 매년 거둬들인 많은 종류의 옥수수 중에서 씨알이 굵고 벌레가 먹지 않은 것을 골라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뒤 이듬해 다시 심기를 수백 년 이상 계속해 왔다. 시간 여유를 충분히 갖고 식물 육종(育種)을 해온 셈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는 것이 약점이다. 전통적인 육종 방법은 일종의 확률 게임이다.

차세대 식물 개량 기술을 확보해 식량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일러스트 박정주

선인장의 장점을 벼에 접목하면…
어느 여배우가 영국의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에게 말했다.

“당신과 결혼하면 내 미모와 당신의 두뇌를 가진 아이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러자 그가 되받았다.

“못생긴 내 얼굴과 덜떨어진 당신 머리를 닮은 아이가 나오지 않을까요?”

이처럼 원하는 성질을 가진 후손을 한 번에 얻을 확률은 사람이나 식물 모두 극히 낮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에게 가뭄에도 잘 자라는 볍씨는 매우 중요하다. 아시아가 원산인 벼는 수확량이 높으나 가뭄·병충해에 약한 편이고, 아프리카가 원산인 벼는 수확량은 적지만 강인해 논이 말라도 오래 견딘다. 두 종류 쌀의 장점, 즉 가뭄에 견디면서 수확량까지 뛰어난 벼를 전통적 방법으로 육종하려면 15년이 필요하다. 두 종류를 교배해 얻은 씨앗을 모두 논에 뿌려 본 뒤 마른 논에서도 볍씨가 굵고 또 많이 달린 녀석이 있는가를 매번 확인하려니 시간이 그만큼 오래 걸린다. 수확량이 높은 아시아 쌀에 ‘가뭄에 잘 견디는 식물유전자’를 넣어주면 안 될까?

가뭄에도 잘 견디는 벼의 아이디어는 사막에서도 꿋꿋이 자라는 선인장에서 얻었다. 잎을 가시로 진화시켜 물의 증발을 최대한 억제하는 선인장은 몸 안에 ‘수퍼 보습제’를 갖고 있다. ‘트리할로스(trehalose)’란 당(糖)이다. 이 당은 알로에의 끈끈한 성분에도 포함돼 있다. 보습력이 뛰어난 트리할로스 유전자를 벼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가뭄에 잘 견디는 벼가 탄생했다.

하지만 벼가 선인장의 도움을 받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보다는 수확량이 많은 아시아 벼와 가뭄에 견디는 아프리카 벼를 혼합 육종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전통적인 육종 대신 원하는 종만을 정확하게 효율적으로 섞을 수 있는 ‘족집게 육종’ 방법이 없을까? 과학자들이 최근 그 답을 찾았다. 답은 식물의 ‘유전자 지도’와 ‘유전자 가위’에 있다. 즉 식물의 완벽한 유전자 순서를 알게 되고 또 원하는 유전자 부위를 아주 정확하게 잘라낼 ‘수퍼 유전자 가위’가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식물세포를 손바닥의 눈금처럼 들여다보는 ‘현미경 수술’이 가능해졌다.

욕심을 더 내보자. 가뭄에 견딜 수 있는 것과 동시에 이왕이면 제초제 없이도 잘 자라는 벼를 만들 수는 없을까? 2013년 미국 미시간대학 우스리카 교수는 벼가 가진 모든 ‘방어무기’ 리스트를 완성했다. 외부 곰팡이·해충·추위·가뭄·장마 등 외부 스트레스에 대한 조절 유전자 196개를 찾아낸 것이다. 이 중엔 ‘잡초와의 경쟁’에서 벼가 이기도록 하는데 유용한 ‘방어무기’도 포함돼 있다. 이 ‘방어무기’를 잘 연구해 논에서 잡초가 자라도 벼가 낱알을 제대로 맺을 수 있게 한다면 뜨거운 땡볕에서 풀을 뽑거나 몬산토의 ‘라운드 업’ 같은 제초제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GM 먹거리에 대한 대중의 불안 여전
그만큼 안전한 벼가 태어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만든 ‘수퍼 벼’가 100% 안전하단 말은 아니다. 이 ‘수퍼 벼’도 장기간에 걸친 연구를 통해 인체·환경에 대한 안전성이 100% 검증돼야 한다. 왜냐하면 식물생명체 내에서 유전자(DNA)가 과학자의 생각대로 움직여 줄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식물은 인간을 위한 존재가 아니다. 살아서 널리 퍼져나가는 것이 식물의 존재 이유다.

2050년엔 지구 인구가 90억 명이 된다. 지금도 12억 명이 하루 1.25달러로 먹고사는 식량 부족 상황이다. GM기술은 이를 해결하는 데 유용한 인류의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이 기술은 세계인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바이오 안전성정보센터(장호민 센터장)가 실시한 국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7%는 백신 치료제를 만드는 GM 바나나처럼 의약·산업용으로 쓰이는 GM 식물의 개발을 찬성한다. 이에 비해 먹거리인 GM 식품에 대한 찬성률은 47%에 머물러 있다. GM 먹거리에 대한 불안·불신이 여전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결과다. 이런 불신을 넘어 차세대 식물 개량 기술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발전이 가능하다.

‘잭과 콩나무’처럼 차세대 식물 기술이 황금알을 낳는 닭이 되고, 한국이 식량 주권국가가 돼 지구촌 다른 곳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인하대 바이오융합연구소(www.biocnc.com)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바이오 테크놀러지(BT)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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