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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본 한국 대입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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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국 입시제도의 요지는 3불 정책(본고사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 기여입학제 금지)에 있다. 3불 정책의 목적은 과외를 없애고, 누구에게나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주면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이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입시제도가 바뀌었지만 과외는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21세기 한국이 필요로 하는 인재 양성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입시제도가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지경이 됐으니 그 입시제도는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외는 어떤 입시제도 아래에서도 없어지지 않는다. 과거 30여 년 동안 15번이나 입시제도가 바뀌었지만 과외는 여전히 번성하고, 앞으로 입시제도가 바뀐다 해도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과외 열풍의 원인이 제도에 있다기보다 한국의 문화 및 학부모의 의식구조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도 교육의 수준이나 출신 대학에 준해 사람들을 차별하고, 언론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출신 학교를 거론하고, 심지어 출신 학교별 족보까지 게재하면서 그 문화를 부추기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호주에서는 유권자들이 총리가 대학을 나왔는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대학 내에서도 교수들끼리 출신 대학을 서로 모르고 산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지난 6년간 학교별 사원채용 현황을 보면 핵심 우수 대학 출신이 5%밖에 안 되고, 우수 대학과 중위권 대학 출신이 각각 21%, 59%라고 한다. 기업들은 세계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인재를 찾고 있지, 특정 대학 출신을 고집하지 않는다. 세상은 이렇게 변해 가는데 학부모들은 여전히 신화적 착각에 빠져 있는 셈이다.

한국의 교육 당국이 고수하고 있는 고교 평준화 원칙도 이제는 근본적 수술이 필요하다. 고교 평준화를 시행하는 선진국도 없고, 최근 일본과 중국도 이를 포기했다. 전국 고교의 학력 수준이 같다고 믿으라는 것은 논리의 모순이다. 그렇다고 고교 평준화가 과외를 막는 것도 아니다.

최근 학계에서는 사회의 신뢰성, 유대감을 사회자본이라 하여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시제도가 경제를 갉아먹는 징후는 사회자본 잠식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 여성들의 출산 기피로 출산율은 1.19로 세계에서 제일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이는 경제의 잠재성장률 저하, 급속한 인구 노령화, 연금 재정위기 등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교육전쟁을 피해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는 가정이 늘어나면서 국부는 유출되고, '기러기' 가정으로 인한 사회 문제가 세계적인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그럼 입시제도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그동안 교육 당국이 시도해 본 무수한 정책이 실패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입시를 대학에 맡기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그리고 교육의 자유화를 해야 한다. 홍콩처럼 외국 고등학교가 한국에 들어와 교육사업을 하고 한국 고등학교와 경쟁하게 함으로써 공교육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러면 자연 조기유학도 줄어든다. 무엇보다 출신학교, 교육 정도에 따른 차별 문화를 없애는 범국민적 운동이 절실하고, 교육문화 개선을 위한 언론의 역할도 필요한 때다.

권오율 호주 그리피스대학교 석좌교수.호주한국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