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베긴·사다트 3명이 머리 맞대 12일만에 극적으로 평화협정 조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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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카터의 중동평화 중재> 「카터」미대통령의 외교치적중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누구나 중동평화조약을 꼽는다. 「사다트」대통령은 77년 2월 「카터」의 방미초청을 받아 그해 4월에 워싱턴을 방문해 중동평화에 대한 미국의 관심과 평화의 원칙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고 같은 해 11월19일에는 「사다트」의 역사적인 예루살렘 방문이 가능하도록 평화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다음해(78년) 2월과 3월에는 「사다트」와 「베긴」을 워싱턴으로 각각 불러 본격적인 평화작업을 시작했고 같은 해 9월5일에는 「카터」「사다트」「베긴」 3명이 미대통령 별장 캠프데이비드에 함께 들어가 12일만인 9월17일 중동평화 원칙을 합의한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카터」의 노력은 비록 모든 아랍국가들을 만족시키지는 못하는 절름발이의 것이었지만 79년 3월26일 「중동」의 평화조약이 워싱턴의 백악관 뜰에서 조인되는 결실을 가져왔었다.

<제3차 중동전>
67년 6월5일에 개전, 6일 전쟁으로 불린다. 개전 직후 이스라엘이 제공권을 장악함으로써 전쟁은 아랍의 완패로 6일만에 끝났다.
요르단이 2일만에 손을 들었고 6일만에 시나이반도 전역과 골란고원을 각각 빼앗긴 이집트와 시리아가 유엔의 휴전안에 동의함으로써 전쟁은 10일 끝났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이집트로부터 시나이반도 가자지구, 요르단으로부터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 시리아로부터 골란고원을 빼앗아 국토(2만1천평방km)의 3배이상 되는 아랍땅(6만8천평방km)을 점령했다.
이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모셰·다얀」(당시 국방장관)이라는 전쟁 영웅을 탄생시켰고 6일만에 완전 승리를 거둬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

<시오니즘>
시오니즘(Zionism 또는 시온운동)은 유대인의 민족운동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선조들의 땅인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재건하려던 운동을 가리킨다.
유대인의 국가재건 희망은 AD70년 로마에 의한 유대인국가 멸망이후 계속되어 왔지만 그것이 근대 정치운동으로 등장한 것은 19세기후반 유대인 배척운동이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일어나던 시기였다.
주창자는 빈의 「테오도르·헤르츨」. 그는 1896년 『유대나라』라는 팸플릿을 만들어 자치국 수립의 구체적인 내용을 제안했다. 이것이 유대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어 이듬해 스위스 바젤에서 제1차 시오니스트 대회가 열렸다.
이러한 물결을 타고 유대인들은 『시온으로 돌아가자』는 기치아래 지금의 이스라엘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의 이주는 1917년 영국의 당시 수상이던「밸포어」가 시오니즘을 인정하는 역사적인 밸포어 선언을 밝힘으로써 국제적인 인정을 얻게 되었고 30년대 독일나치의 유대인 탄압과 더불어 더욱 활발해졌다.
결국 유대인들은 1천9백년에 걸친 소원을 성취, 1948년 5월14일 현재와 이스라엘이라는 독립국가를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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