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만이 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그는 젊고 쾌활한 상인이었다. 어느 여름날, 장을 보러 집을 나서려는데 아내가 옷소매를 잡았다. 밤새 꿈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의 머리가 하얗게 센 모습을 꿈에 본 것이다.
그래도 이 상인은 집을 떠났다. 길이 늦어 그날 밤은 시골 여관에서 지냈다. 아직 새벽이 으스름한데 그는 다시 길을 떠났다.
백리 가까이 갔을까, 말에 먹이를 주려고 잠시 쉬는데 어디서 기마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이 젊은 상인의 짐 보따리를 뒤지더니, 시퍼런 칼을 하나 찾아냈다. 거기엔 피가 묻어있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물론 그 칼은 젊은이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경찰들은 그를 살인범으로 단정하는데, 이 칼을 둘도 없는 물증으로 삼았다. 엊저녁 여관에 함께 들었던 사람에게서 거금을 빼앗고 그 사람의 목숨까지 끊었다는 것이다.
감옥에서 이 상인은 몇 차례나 청원서를 냈다. 허사였다. 법정은 그에게 시베리아유형을 선고했다.
그 동안 세월은 26년이나 지났다. 그는 죄수이기보다는 성인의 모습이었다. 교회에 열심하고, 때로는 기타를 치며 다른 죄수들을 위로도 해주었다. 그의 머리는 백발이 되어 있었다.
하루는 그의 감옥에 60대의 노인이 새로 들어왔다. 몸집도 크고 건장한 사람이었다.
그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던 끝에, 그 신참자가 바로 이 상인과 같은 고장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문제의 살인강도 사건의 진범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순간 증오심이 끓어오른 상인은 그를 죽여버릴까도 생각했다. 며칠 밤을 새우며 복수를 궁리했다.
마침 그 신참자가 탈옥을 모의하고 있는 것을 상인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발각되고, 끝내는 수사까지 받게되었다. 상인이 한마디만 하면 그 신참자는 중형을 받게된다. 복수의 기회는 이때였다. 상인이 모든 것을 말해버리면 그는 당장 자유의 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상인은 끝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밤이 깊은데 문제의 범인이 상인 곁으로 기어와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다. 칼을 그의 보따리에 숨겨 넣은 것도 자기라는 것을 다 얘기해버렸다.
상인은 기어이 입을 열었다. 『당신은 참 쉽게 말하는군요. 그러나 나는 26을 여기에서 살았소. 내가 지금 어디로 가겠소?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아이들은 이제 나를 잊어 버렸소. 나는 갈곳이 없소.』
법정이 그 상인에게 무죄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그는 숨을 거둔 뒤였다.
이 얘기는 「톨스토이」의 단편 『비만이 안다』의 줄거리다. 범죄의 세계엔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작품으로 남겨놓고 있다. 법관, 모든 수사관들을 위해 이 얘기를 소개하는 바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