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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즐겨읽기] 이 추리소설엔 핏자국이 없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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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일본에서 소설 ‘게임의…’를 영화화한 ‘g@me’의 한 장면.

와일드 소울 1,2
가키네 료스케 지음, 정태원 옮김,
영림카디널, 각 350쪽 안팎, 각 권 8500
게임의 이름은 유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노블하우스, 320쪽, 1만원

일찍 찾아온 무더위를 씻어줄 일본 추리소설 두 권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선보였다. 에도가와 란포 류의 엽기 코드나 모리무라 세이이치 류의 중압감도 없고 야쿠자가 판을 치는 마구잡이 대중소설과도 다르다. 대신 올들어 쏟아지는 일본 소설들과 맥을 같이 하는 산뜻함이 있다. 범죄를 소재로 한 소설을 산뜻하다 하니 어색하긴 하다. 그러나 살인이 없고(죽는 사람은 있다), 가벼운 터치로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달리 적절한 표현을 찾기 힘들다.

'와일드 소울'은 1960년대 브라질로 이민간 일본인의 후손들이 주인공이다. 천혜의 낙원이란 정부와 이민대행사의 말을 믿고 떠났던 이민자들은 낯설고 거친 땅에서 죽을 고생을 한다. 간신히 살아남은 이민자와 그들의 후손은 '패전의 상처에서 벗어나려던 일본 정부가 한 입라도 덜려고 자기들을 버렸다고 믿고 보복을 감행하는 것이 이 책의 줄거리다.

이민 생존자와 2세 두 명은 일본에 돌아와 외무성에 총을 난사하고 관련 관료와 업자, 홍보사 간부를 납치하며 정부의 사과를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범행 목적을 홍보하기 위해 방송사 여기자를 이용하려던 주인공은 사랑에 빠지고….

정책 잘못에 대한 정부의 정식 사과를 받자고 테러를 감행하는 격인데, 석 달간의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국가는 과연 늘 옳은 것인가, 잘못한다면 누가 어떻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등 만만치 않은 사회의식이 담겼다. 일종의 사회파 추리라 하겠는데 무모하기만 한 이들의 행각이 깔끔하게 묘사되어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데 성공했다. 추리작가협회상 등 일본 최초로 3개 문학상을 동시 수상했다느니 '이 작품으로 일본 정부는 파멸해 간다'는 선전문구는 조금 호들갑스럽긴 하다. 그러나 60년대 브라질로 집단이민을 보낸 우리나라에선 이런 스케일이 큰 작품이 없을까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게임의 이름은…'은 유괴범 이야기다. 광고기획사의 사쿠마 순스케는 잘 나가는 기획자. 인생을 하나의 게임으로 여기는 쿨한 젊은이다. 난생 처음 기획안을 딱지 맞고는 클라이언트에게 보복하려 벼르다 그 딸의 가출을 목격한다. 가출 사연을 들은 사쿠마는 유괴극을 벌여 몸값을 털기로 하고 그녀와 함께 자작극을 벌인다. 범인과 피해자가 한 통속이 된 유괴사건은 이미 소설이나 영화로 더러 다뤄진 소재다. 범행 과정이 치밀하게 그려지고 그 과정에서 둘은 서로 끌린다는 구조도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소설은 막판에 극적인 반전이 준비되어 있다. 읽는 이들은 "결국 그렇지 뭐"하다가 어리둥절해 하고 책을 덮으면서야 "아, 그랬구나"하고 끄덕이게 된다. 이 소설은 일본에선 영화로도 만들어졌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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