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내신비중 대폭늘고 성적 큰 차이|동점이 심하면 5등급 격차|흔들리는 배치기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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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Y고 출신의 장모군(18)은 학력고사에서 2백81점을 얻어 S대 공학계열과 K대 의예과를 복수지원했다.
장군 자신이나 그 부모는 학교측이 마련해준 적정배치 기준에 따라 원서를 냈기 때문에 S대 합격을 어느 정도 자신하고 있다. 그러나 정각 배치기준을 만든 이학교 안모 교사(46)는 내심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장군의 내신이 2등급이기 때문이다.
안교사는 지난 l7일 장군과 학부모를 불러 22일 면접에서는 K대 쪽으로 가도록 설득했나 『다른 학교에서는 나보다 못한 성적을 받은 학생들도 지원을 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었다.
서울의 성적우수 고교에서는 22일 최종전형을 앞두고 이 같은 실랑이가 자주 벌어지고 있다. 각 대학이 원서접수를 마감한 뒤 지원자들의 추세와 내신 성적등을 감안한 새로운 배치기준을 학교마다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고민에 빠져 있다.
대학의 한두개 최고인기 학과가 아니라면 이 점수로 그렇게 무리한 지원은 아니라고 판정하고 있다.
학교에 따라서는 종전에 만든 가능선보다 5∼6점씩이나 높인 경우도 없지 않다.
그것은 보다 확실한 안전 합격을 노려서겠지만 이처럼 점수차를 높여 보낸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 학교출신 학생들의 전반적인 성적이 타시·도나 같은 평준화 지역안의 다른 학교보다 우수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신평가에서 손해를 보게 돼 이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의 S고교는 이번 입시에서 S대에 1백35명이 원서를 냈으나 「억울한 내신감점」을 우려, 20% 정도가 복수지원을 한 다른 대학으로 빠져나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진학지도 담당 김모교사(41)의 설명이다.
학력고사 성적에 따른 시·도별 내신 등급비교 (중앙일보 15일자 1면 참조)에 따르면 서울·부산 등 대도시와 다른 지방간에는 같은 점수로도 1∼2등급씩 차가 있다. S고, Y고, Y여고 등 서울시내 성적우수 고교의 경우는 심지어 4∼5등급까지 격차가 벌어져 「공부 잘하는 학교를 나온 덕」이 입시의 막바지에 가서는 오히려 손해의 역작용을 하는 모순을 낳게 된 것이다.
성적분포가 공개된 지난해와는 달리 커트라인이 어디쯤일지 조차 짐작할 수 없는 올해 상황에서는 지원자들의 내신등급을 추첨하기란 더욱 어렵게 됐다.
따라서 학교측이 마련해 놓은 배점기준에 근접되어 있는 수험생들은 자기학교의 성적위치에 따른 내신 등급격차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입시관계 전문가 .J모씨는 『배짱 좋은 허수가 요행합격을 바라 버틴 반면 정작 실력있는 고득점자들이 겁을 집어먹고 물러서 미달사태를 빚은 지난해 입시도 그 소용돌이의 근원은 바로 내신의 변수 때문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80학년도까지만 해도 내신 반영률은 2∼9%에 지나지 않아 내신 점수차가 합격을 좌우할 만큼 큰 작용을 하지 못했으나 지난해에는 20% 이상, 그리고 올해는 30∼50%까지로 대폭 늘어나 상위 학과일수록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연대·고대·이대 등 30%를 반영하는 대학들의 내신등급간 점수차는 2·6점, 32%인 서울대는 2·9점에 달해 1, 2점을 다투는 경쟁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내신등급간의 점수차 때문에 예상 합격선보다 1, 2점이 낮더라도 다른 지원자들보다 내신성적이 상대적으로 높다면 안전합격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고 또 그 반대 경우도 예상할 수 있어 앞서의 S고처럼 많은 학생들이 내신등급의 불운을 안고 빠져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배재고 이병국 교사는 『지난해 공·사립학교별, 지역별로 연합전선을 펴 만들었던 배점기준 등의 자료가 올해엔 아무런 쓸모 없이 돼버린 것도 학교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내신 성적 탓』이라면서 『올해는 지구장학 협의회나 일선지도 교사들의 모임에서 그 비슷한 기준을 마련했으나 대부분의 학교에서 이를 수정, 각 학교의 내신등급 특성에 맞추어 조정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다른 고교에서 2백80점이면 다 S대 공대나 Y대 의예과를 보내 주는데 왜 우리 학교에서는 원서조차 써주지 않느냐』는 등의 항의는 수험생이나 학부모가 바로 이같은 내신이 주는 압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데서 빚어지는 것.
상문고 김정수 교사는 『몇점 대면 내신성적이 몇 등급이라는 원칙이 전국은 물론 서울 지역에서조차 통용되지 않기 때문에 수험생들의 최종 결정은 결국 각 대학계열·학과의 지원자 점수나 내신등급 등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는 상담교사들을 통해 조심스럽게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명문대 인기학과에 지원하는 고득점자 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내신등급까지 비례적으로 좋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설사 l, 2등급이 아니더라도 지레 겁을 낼 필요는 없다』고 충고했다. <홍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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