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의「자율화」가「자유방임」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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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부가 올해부터 머리모양은 학생들의 자유의사에 맡기고 교복은 내년부터 학교마다 교장의 재량에 따르도록 한 것은 우리 교육계에 전해진 새해 벽두의 낭보라 아니할 수 없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보수성이 강하다.
그러나 교육은 항상 변화에 적응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획일적인 교복과 교모를 착용하고 머리를 삭발하게 된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이식한 군국주의의 슬픈 잔재였다. 그런데도 교복과 삭발을 해방된 지 36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버리지를 못했다.
교육의 민주화를 외치고『새 교육』을 주장하는 등 교육의 서구화가 물밀듯이 유입되었어도 교복의 자율화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교육의 보수성치고는 너무한 일면이었다. 그러한 요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검토될 수 있겠으나 한가지만 지적한다면 군국주의 일본교육에 젖어온 우리교육계의 옹고집을 들 수 있겠다.『옹고집』은 지조나 수호가 아니다. 부질없는 아집이요, 퇴영적 억지다.
군국주의를 산출한 장본인이었던 일본은 2차대전이 끝나면서 획일성의 교육풍토를 씻어버렸는데 오히려 그 지긋지긋한 식민통치를 받았던 우리는 식민교육의 잔재인 획일 교육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였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미와 색상에 대한 감각을 억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아래 내려진 교복자율화 방침은 단순히 교복을 자유롭게 입을 수 있다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교육에서 일본식민교육의 잔재를 말끔히 씻어내고 새 시대 새 사회에 걸맞은 민주교육의 전진이란 점에 그 지닌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이제 을씨년스럽고 삭막해 보였던 교정은 울긋불긋하게 단장한 청초한 학생들로 하여금 따뜻하고 명랑한 분위기가 감돌 것이다. 거리도 한층 아름답고 활기가 넘칠 것이다.
학생들의 마음은 외모의 다양한 변화로 인하여 더욱 설레고 부풀 것이다.
생활 그 자체도 여러모로 다채로와 질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은 또한 우리 교육계 전반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학생들의 외모가 여러 가지로 바뀌고 학생마다 나름대로의 복식을 갖춘다는 것은 바로 우리교육이 학생마다에 알맞은 개성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개성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획일성 교육이 털끝만큼이라도 있어서는 안되며, 전인교육의 성과가 개별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굳어진 사고의 획일화, 제도의 획일화, 교육실천의 획일화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창조적인 사고, 융통성 있는 제도의 운영, 학습성과의 개별화가 준행되는 그러한 교육풍토 조성에 가일층 노력할 것이 요구된다.
그런데 교복의 자율화는 교육의 자유화는 아니어야 한다는 점을 일러두고 싶다. 자율화와 자유화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자율화는 자기통정의 원리가 존속되나 단순한 의미의 자유화는 제멋대로의 방종으로 흐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사회의 성인이라도 그러해서는 안될 값비싼 옷감으로 몸치장을 한다든지, 이상야릇한 장식품을 사용한다든지 하여 사치와 낭비를 조장하고 저속성을 드러낸다면 이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은 교육적이어야 한다. 교복의 자율화, 머리모양의 자율화가 교육적이 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조치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번의 모처럼의 낭보가 교육적이기 위해서는 선생님과 학생과 학부모와의 사회의 모든 분들이 좀더 교육철학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교육이 지향해야할 가치에 올바르게 접근하는 노력이 병해 돼야 할 줄 안다.
학생들의 교복과 외모가 다채로와 지고 학생과 학생 아닌 사회인과의 구별이 외모에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을 때 야기 될 수 있는 문제는 많은 것이다. 학생 아님을 가장하기 위하여 가발을 준비한 학생, 아예 가발을 준비하여 놓고 학생을 성인으로 가장시켜 성행위를 벌여 온 사회인이 지난날 없지 않았다는 것을 되새겨 볼 때, 우리는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발전시키면서 깊이 성찰하는 바가 있어야 할 줄 안다. 교복을 자유롭게 입게된 것이 좋다 나쁘다는 것을 따지기에 앞서 그것이 좀더 교육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학생은 자기자신이 얼마만큼 품위 있는 학생이 될 수 있는가에 기준을 두어 외모를 가꿀 것이며 선생님은 변화된 학생들마다 민주·복지사회의 성숙한 사회인으로 손색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를 해야할 것이다. 학부모와 모든 사회인들 또한 우리 학생들이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유능 성실한 일꾼이 되도록 깊은 사랑으로 돌보아 가야할 것이다.
전체로서는 조화와 통일성을 유지해 가는 가운데 다양화가 청순하게 조성되는 그러한 교복의 자율화야말로 질서와 안정을 추구하면서 민주와 복지의 낙원을 건설해 가고자하는 우리 국민교육의 구현이며, 격변하는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며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려는 우리교육의 염원에 부응하는 길이라고 하겠다.
새해의 낭보가 자랑스런 결실을 보는 날들이 우리의 교육사에 점철되어 가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유형진<대한교련회장>
▲1926년 원주출생 ▲서울대 사대·미 하버드대대학원 졸(교육학박사) ▲건국대교수·숙명여대 및 한양대사대학장 역임 ▲현재 한양대교수·학술원 회원 ▲저서『교육과 주체성』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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