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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바빠진 상담창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5일 새벽5시. 중대부고 진학지도담당 박내창교사가 사는 집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원서마감이 지날 때까지 눈치작전을 벌이다 밤12시 되어서야 K대 경제학과와 S대 무역학과에 원서를 낸 L모군 어머니의 안달스런 목소리가 잰잰하게 들려왔다.
『선생님, 어쩌면 좋지요. 1지망으로 넣은 과가 4대1이나 되니, 아무래도 S대로 빼야 할까봐요. 그쪽은 1.6대1밖에 안된 다잖아요.』
그 동안 학부모와 학생들의 눈치작전 정보참모 노릇을 하느라 피로에 지친 박교사는『원서 접수 상황을 검토해본 뒤 3, 4일쯤 지나서 천천히 의논하자』고 했으나 상대방은 막무가내, 지도교사가 달아나 버리기라도 할 듯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개학 때보다 더 바쁜 방학을 보낸 박교사는 입시 회오리에 식구들까지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없어 평상시처럼 아침 일찍 서류를 싸들고 학교로 나갔다. 교무실에는 벌써 5, 6명의 학부모들이 빚쟁이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원서접수는 끝났지만 진학상담은 끝나지 않았다. 고교의 진학 상담실은 오히려 더 뜨거워지고 있다.
「양자택일」의 면접 날까지는 아직도 1주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14일 하오2시 서소문 B고교 수위실 앞. 코끝이 찡한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10여명의 학부모들이 삼삼오오 둘러서서 사뭇 긴장된 가두회의를 벌이고 있다.
날이 새자 종종걸음으로 상담실을 찾아 학교측과 장시간 의논을 했지만 날씨처럼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기 때문.
『해가 갈수록 내신 반영률은 높아지는 추세인데다 갈만한 후기대학이 없는 상황에서 내 자식이라 하더라도 재수를 각오하고 버터보라는 식의 강경한 지도는 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예일 여고 고원영교사는 진학지도의 어려움을 말했다.
배재고 이병국교사는『아주 우수한 학생이나 2백점 이하의 수험생들은 원서를 한 장씩만 쓰고 제나름대로 판단이 서있어 별문제 없지만 중위권은 학생과 학부모가 번갈아 가며 하루에도 여러 차례 전화를 걸거나 찾아오고 있어 22일까지 또 얼마나 시달려야할지 모르겠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원서마감 후 면접까지 10일간의 기간을 둔 것은 각종 루머가 생길 우려도 있어 수험생 자신이나 가족들은 물론 교사들까지 더욱 큰 불안과 혼란 속에 몰아넣기도 한다.
일선학교 주변에는 벌써 시내T고교가 S대 합격권내에 도는 고득점자 80여명을 Y대 C과에 집중 복수 지원토록 하여 실제로 그 학과를 지원한 중위권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바람잡이 전술을 썼다는 소문이 나돌고있다.
또 지난해 허수에 속아 합격권에 들었으면서도 명문대를 놓친 비 명문대 재학생들이 올해 다시 학력고사를 치른 후 원서1장만을 써 명문대 인기학과를 노리고 있어 이들 학과의 경쟁률은 면접 때까지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등의 소문이 나돌고 있다.
C여고출신의 박모양은 학력고사 2백58점에 내신은 3등급. 이대의 예과와 원주대를 복수 지원했다.
이대 쪽은 아무래도 커트라인 아래일 것 같아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해서 원주대로 가기에는 왠지 손해보는 것 같아 억울해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14일 하룻동안 학교상담실을 부모와 같이 두 번이나 들르고 다른 학교의 안면이 있는 교사들에게도 자문을 구해보았으나 모두들 고개만 갸우뚱할 뿐 자신 있는 말을 해주지 않아 답답하긴 마찬가지.
결국은 어머니가 자주 다니는 사직동 점장이한테까지 찾아갔으나『알듯 모를 듯한 소리만 들었다』며 초조해했다.
수험생들의 고민은 박양의 경우처럼 ▲복수지원에서 어느 쪽을 택할 것 인가로부터 ▲학력고사 성적은 배점기준을 넘어셨다고 보지만 내신등급이 모자라는 경우 어떻게 해야하나 ▲경쟁률이 낮은 과와 높은 과에 복수지망이 걸렸는데 실제 경쟁률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경쟁상대가 되는 수험생들의 성적분포를 어렴풋이 나마 알아달라 ▲1지망에서 밀려날 경우 커트라인이 더 높아질 수도 있는데 2, 3지망의 흐름은 어떤가하는 것들이다.
박내창교사는『복수지원의 한계 때문에 우선 표면적인 경쟁률은 그 나름대로 인정해주어야 할 것 같다』면서『가장 중요한 것은 각 대학·학과별로 3일간의 지원추세가 어떠했는가를 면밀히 검토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홍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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