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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4. 땡볕 <17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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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기동순찰 중대는 기지 경내와 외곽을 순찰하고 주변 작전도로의 안전 여부를 점검하는 일이 주요 임무였지만 한국군과 베트남군과의 작전 협동을 연결하는 임무도 맡고 있어서 우리가 미군에 배속된 셈이었다. 그러므로 베트남군 순찰병들도 우리와 함께 판견되어 있었다. 이들은 주로 기지 주변에 있는 여러 촌락들의 순찰에 미군들과 동행했다. 침투가 쉽지 않은 해변가에 비행장이 있었고 비행장 안쪽에 우리의 숙소가 있었으며 경비 병력이 철조망과 감시탑이 서있는 외곽에서 방어를 했다. 다시 외곽 지역에는 작전부대 단위로 독립 방어구역이 있어서 날마다 매복과 수색 정찰을 계속했다. 그래도 산을 넘어 정글을 통과한 월맹 정규군과 지방 게릴라들이 촌락과 작전구역에 날마다 침투했다.

우계 공세가 계속되던 어느날 대대적인 적의 침입이 빈손 읍내와 기지 남쪽의 탬키 마을에서 벌어졌다. 나는 그날 일번도로가 아닌 촌락 순찰에 나갔는데 오후에 공공연하게 기동순찰 차량이 빈손 읍내의 길 한복판에서 저격을 받은 것은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빈손에는 군청이 있었고 베트남 경비중대가 있었으며, 포로수용소와 한국군 경비중대가, 외곽에는 미군이 방어선을 치고 있었다. 빈손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조원이 보고했다. 읍내에서 시장 앞을 지나는데 베트남 민간인들이 떠들썩하게 모여 있었다. 차를 세워두고 세 사람이 개인화기를 들고 사람들 쪽으로 다가가니 베트남 방위병 한 사람이 여러 청년들에게 맞고 있었다고 한다. 방위병들은 남베트남의 정규군은 아니고 일정 기간 훈련을 시킨 뒤에 치안 유지나 교량의 초소 등을 맡겨 일종의 지역 경찰 임무를 맡긴 사람들인데 미군이나 우리나 그들을 별로 믿지 않았다. 매복초소를 지키라고 하면 제멋대로 철수하거나 밤에는 달아나기 일쑤였다. 그래도 민간인들이 그들을 구타하는 것은 문제였기 때문에 순찰병들은 때리던 젊은이들을 말리고 나서 그중 하나를 연행하려고 했다. 그들은 무기를 든 미군도 무서워하지 않고 마주 힘을 쓰며 대들다가 뿌리치고 달아나기 시작했고 순찰병들은 그들 뒤를 쫓아갔는데 화가 났던 미군 병사가 공포를 쏘았던 모양이었다. 그들이 시장의 광장 모퉁이에 이르자 어느 틈에 민간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숨고 텅 비었는데 어느 집 지붕 위에선가 AK47 자동소총이 발사되었다. 앞장서서 뛰어가던 미군 병사가 총탄에 맞았다. 순찰병들은 부상 당한 동료를 떠메고 마주 사격하면서 간신히 시장을 빠져 나왔다. 뭔가 조짐이 이상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날 자정에 이미 읍내의 여러 민가로 침투해 있던 게릴라들이 공격하는 혼잡 중에 정규군이 들어와 포로수용소와 군청을 점령했다. 몇몇 한국군 토치카는 점령 당하지 않고 밤새껏 사격하면서 버티었고 경비중대는 방어선을 안쪽으로 후퇴시키면서 전멸을 모면했다. 다만 '내 머리 위에 포격하라'고 좌표를 불러주던 해병 중대장은 전사했다.

나는 같은 날 탬키로 순찰을 나갔다. 뉘엔이라는 베트남군 하사관이 우리와 동행이었는데 근무지마다 첩이 있다고 놀림을 받던 자였다. 뉘엔은 그의 단짝인 카오와는 달리 덩치도 크고 활달해서 미군들과 곧잘 농담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 보다는 카오를 더욱 신뢰하는 편이었다.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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