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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기획] BMW 모터사이클 동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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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태양 아래 부서지는 파도 소리 말고는 움직임도 거의 없는 적막한 일요일 오전의 바닷가.

별안간 지축을 흔드는 기계음이 철 이른 피서객들의 게으른 아침을 부순다. 줄지어 늘어선 바이크들이 질주를 재촉하며 토해내는 기염이다. 100대가 넘는데도 하나도 같은 게 없다. 취향과 기호에 따라 튜닝을 한 바이크들이 저마다 개성을 뽐낸다. 고속도로순찰대 오토바이와 똑같은 모델도 있고 경주용 모터사이클처럼 날렵한 것도 있다. 어떤 것은 독일 경찰 오토바이를 그대로 본떠 'Polizei'라고 써붙이기까지 했다.

로드매스터의 선도로 두 줄로 엇갈리게 선 바이크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수백m 이어진 '질주 기계'들이 거친 숨소리를 내뿜으며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동해 글=이훈범 기자<cielbleu@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5일 강원도 망상해수욕장의 오토캠핑리조트에서 열린 모터사이클 동호회 BMW 모터래드클럽 코리아(MCK)의 여름철 정기 투어 풍경이다. 이런 대규모 정기 투어는 연간 2~3회뿐이다. 대신 지역별 또는 가까운 사람들끼리 결성한 소단위 팀별로 매주 투어를 한다. MCK가 결성된 것은 BMW 바이크가 정식 수입된 직후인 1999년. 서너 명의 BMW 애호가들이 모여 결성한 것이 6년 만에 회원 수가 150명이 넘는 중견 단체로 성장했다.

회원 가입 조건은 단 하나다. BMW 바이크를 가지고 있으면 된다. 그런데 그게 간단하지 않다. 바이크 한 대에 2000만~3000만원대에 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원들은 중소기업인이나 전문직업인 . 자영업자 등 중산층 이상의 청장년층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는 칠순을 바라보는 '젊은 오빠'들도 있다. MCK 고문인 한익걸(68) ㈜123 대표도 그런 바이크 매니어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지금도 핸들을 잡으면 젊은이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한 대표가 열아홉 살 무렵 이웃에 살던 독일인 선교사가 사이드카까지 달린 독일제 오토바이를 갖고 있었단다. 탈탈거리는 배기량 50㏄의 고물 오토바이가 전부였던 한 대표는 그 오토바이가 너무 타보고 싶었다. 매일 같이 그 집 마당을 쓸어주고 오토바이를 닦아준 끝에 겨우 한 번 얻어탈 수 있었다. 그런데 신나게 몰고 나갔다 접촉사고를 내는 바람에 오토바이에 흠집을 냈다. 선교사의 꾸중보다 멋진 오토바이에 상처를 낸 게 더욱 가슴이 아팠다. 그 이후 한 대표는 절대로 오토바이를 다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마음먹었다. 자연 난폭운전이나 신호위반 등 못된 버릇이 없어졌다. 그것이 47년 무사고 경력의 비결이기도 하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지요. 운전자가 바이크를 제어할 수 있어야지, 바이크에 끌려 다니면 안돼요. 특히 성능이 좋은 바이크일수록 자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MCK 회원 중에는 남편을 바이크에 뺏기고 주말 과부가 된 아내가 홧김에 바이크를 배운 뒤 함께 투어를 다니는 부부 라이더들도 많다. 신홍배(47.토목업)씨와 최옥희(42)씨 부부가 그런 경우다. 특히 옥희씨는 MCK 회원 중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실력파 비머(BMW 바이크 애호가들의 애칭)다.

"남편에게 나도 바이크를 타겠다고 했더니 면허를 따면 사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도 수없이 떨어졌는데 내가 어떻게 따겠나 생각했나 봐요. 단번에 따버렸죠."

이들 부부는 무선 교신 장치가 달린 헬멧을 쓰고 서로 대화를 나누며 매 주말 라이딩을 즐긴다. 특히 신 대표는 최근 간 이식수술을 받아 주치의가 절대 바이크를 타지 못하게 하는데도 몸이 근질거려 참질 못한다.

"이 기사가 나가면 의사 선생님한테 혼날 텐데…."

MCK 회원들이 바이크를 타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일상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헬멧을 쓰고 달릴 때면 바이어와의 골치 아픈 상담도, 떨어지는 실적 걱정도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길과 나'만 남는다. 바이크는 길과 나를 이어주는 매개체일 뿐이다. 위험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안전장비를 갖추고 교통신호 등 규칙을 지키며 타면 결코 위험할 게 없다"고 MCK 신주현(41)총무는 강조한다. 실제로 모든 BMW 바이크는 ABS 브레이크 등 자동차 못지않은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다.

독일 BMW 그룹의 BMW 오너스 클럽에는 유럽을 포함, 미국.캐나다.뉴질랜드.일본.싱가포르 등 전 세계 12만 명 이상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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