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학|소화기 질환|결핵성 장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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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근래에 좋은 결핵치료제가 많이 개발되어 우리 나라에도 결핵환자가 점차 줄고 있다. 따라서 심한 폐결핵환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결핵성장염이나 결핵성복막염의 발생빈도도 많이 줄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대장내시경술과 같은 좋은 진단방법이 개발되어 옛날 같았으면 그대로 지나쳐버렸을 증례가 정확하게 진단되므로 결핵성장염의 환자가 그런대로 계속 발견되고 있다.
약2년 전의 일로, 24세의 예쁜 처녀가 무려 6개월간 계속되는 만성설사 때문에 병원을 찾아왔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하루에 두세번씩 설사를 하는데 대변에 점액이나 혈액의 흔적도 없고 굳은 대변의 형체는 물론 찾아볼 수 없으며 물 속에서는 곧 풀어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가끔 오른쪽 아랫배가 아팠으나 참을 수 있을 정도였고, 식욕이 없고 체중이 줄어 몇 달 동안에 약 5㎏이 빠졌다고 했다.
인근의원에서부터 비교적 큰 병원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서 가슴사진은 물론 혈액검사·뇨검사·소장 및 대장X선사진·초음파사진 등 여러 가지 전문적인 검사를 받았지만 뚜렷한 병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다수는 신경성설사라고 하고, 혹은 흡수장애라고 진단을 내려주었지만 이에 따라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를 했어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마침 어느 종합병원에 갔더니 혈액검사 결과가 좀 이상하다면서 이것을 규명하기 위해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필자에게 의뢰를 해 보낸 것이었다.
필자도 검사를 시작할 때는 별다른 소견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거의 검사가 끌날 무렵 상행결장에 콩알 같은 결절이 여러개 모여있는 것이 발견되었고, 이를 떼어 조직검사를 했더니 결핵에 유사한 소견이 나타났다. 이때부터 결핵치료를 시작하여 3주일이 지나면서 설사는 물론 멎었고, 식욕이 좋아지며 체중이 조금씩 늘기 시작해 약l년 후에는 완전히 회복, 자신감을 갖고 결혼하게 되었다.
이 증례는 좀 극적인데가 있는 극단적인 예이지만 최근에 대장내시경술이 개발된 후로는 이 증례에서와 같이 흉부X선 사진상으로 전혀 폐결핵의 소견이 나타나지 않지만, 이 검사로 장결핵의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예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예는 몸의 다른 부분에 결핵이 없이, 소장 혹은 대장에 먼저 결핵이 생겼다는 뜻으로 원발성 장결핵이라고 부른다.
원발성 장결핵은 원래 소독이 잘되지 않은 우유를 먹는 사람에게, 결핵을 앓는 젖소에서 묻어나온 결핵균이 우유에 섞여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이러한 원인으로 감염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폐는 아니더라도 임파선이나 복막과 같은 몸의 다른 부분에 결핵이 있다가 결핵균이 장으로 퍼져서 염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다른 원인 없이 오랫동안 설사를 계속하거나, 가끔 복통을 일으키거나, 체중이 감소하는 환자에게서는 대장내시경검사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정밀검사를 실시하면 의외로 병의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규완<서울대병원 소화기 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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