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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에 시민청원 「러시」|반우익 숙청·문혁희생자 줄이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관리들이 우리 아버지를 살해하고 집을 빼앗아 갔습니다. 곡식이나 헌옷이라도 좀 주세요』-북경의 어느 길모퉁이에 한 소녀가 손으로 쓴 호소문을 펴놓고 오들 오들 떨고 앉아있다.
『나는 등소평의 정책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숙청당했었다. 등이 권좌에 복귀한 지금에도 나에겐 일자리가 없다』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익명의 벽보가 사람들이 붐비는 상가에 나붙었다가 경찰에 의해 재빨리 철거된다.
지난30년간의 격동기에 희생된 많은 중공인들은 이같이 필사적으로 탄원하고 있다.
66년부터 76년까지 계속된 문화혁명때 많은 사람들이 숙청 당했고, 또 50년대말의 반우익숙청이후 많은 불평이 생겨났다.
실용주의자 등소평이 다시 집권하자 수 만명의 청원자들이 북경으로 몰려들어 자신의 입장을 호소하거나 도움을 청했다. 아직도 전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8천명정도가 남아 있다. 그들은 대부분이 직업이 없고 식량배급표도 없이 하루하루를 절망 속에 살고 있다.
돈과 정치적 연줄이 없어 이들의 나날의 생활은 참담하다. 악취투성이의 진흙동굴 속에서 살고있는 사람도 수백가구나 된다. 넝마를 줍거나 구두수선 또는 손으로 만든 보잘 것 없는물건을 팔거나 구걸로 연명한다.
북경당국은 이들의 정당한 청원을 들어주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등소평도 이들을 구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청원자들은 믿으려하지 않는다.
그러한 말뿐인 약속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하는 이들에게는 별 위로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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