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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대통령 전격 사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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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 6일 천연가스 국유화를 요구하면서 라파스에 모인 수만 명의 시위대 앞에서 볼리비아 원주민 지도자 자이메알라노카 마마니가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라파스 AP=연합]

볼리비아에서 수주일째 계속된 대규모 가두 시위로 카를로스 메사 대통령이 6일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천연가스 산업 국유화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중순 시작된 시위는 최근 규모가 8만여 명까지 불어나면서 행정수도 라파스를 마비 상태에 빠뜨렸다. 현재까지 22명이 체포됐다. 유혈 사태는 아직 벌어지지 않았다.

◆ 시위 이유=빈부 격차, 인종 갈등, 세계화와 반세계화의 문제가 복합돼 있다. 주도 세력은 야당을 위시한 농민 단체와 노조, 인디언계 원주민 등이다. 남미에서 둘째로 매장량이 많은 천연가스 문제가 시위를 촉발했다. 시위대는 천연가스 산업을 100% 국유화하자는 '에너지 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외국 자본의 투자로 이뤄진 천연가스 개발이 정작 볼리비아 국민의 배를 불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난달 의회는 천연가스 산업에 투자한 외국 기업에 대한 세금을 현행 18%에 32%를 추가로 인상했다. 세율을 높여 국민의 반발을 무마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세금 인상은 미봉책"이라며 오히려 국유화를 더 요구하고 나섰다.

시위가 장기화한 배경에는 지역 간 빈부 격차 문제도 있다. 산타크루스 등 동남부 지역은 천연가스 매장량이 풍부해 비교적 부유하다. 스페인계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

볼리비아의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이들은 독자적으로 자치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8월에 국민투표에 부칠 생각이다. 동남부의 이러한 '지역 이기주의'에 반발하는 서부 고산지대 원주민들이 이번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빈민층인 원주민들은 볼리비아 인구의 절반이 넘는다.

◆ 어떻게 되나=메사 대통령이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과 비슷한 시위가 벌어졌던 지난 3월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는 사임안이 의회에서 거부돼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이번에도 의회는 뾰족한 수가 없어 메사 대통령의 사임안이 거부될 가능성이 있다. 메사 대통령은 2003년 10월 대규모 유혈 사태를 불러온 반정부 시위로 곤살로 산체스 대통령이 축출된 뒤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임기 만료(2007년 8월)를 2년 여 남겨두고 있다. 볼리비아의 혼란은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천연가스 산업의 전면 국유화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메사 대통령은 "시위대의 국유화 요구가 비합리적이어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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