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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개념계획 5029'와 한·미동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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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미 동맹의 건강성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지난 5일 윤광웅 국방부 장관과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북한 유사시를 대비한 '개념계획 (Concept Plan:CONPLAN) 5029'를 보완.발전시키되 작전계획 형태로는 만들지 않기로 했다.

'개념계획 5029'는 북한 정권 붕괴 또는 대량 난민 탈출 등 전시 상황과 무관한 북한 내부 요인으로 인한 급변사태와 관련한 대비책이다. 때문에 군 부대 투입 계획 등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담고 있지 않다.

한미연합사와 합참 차원의 논의를 통해 양국이 이 문제를 둘러싼 이견을 조정하지 못했던 이유는 북한의 급변사태를 전시(戰時)로 보느냐, 평시(平時)로 보느냐의 시각차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북한 내 일부 세력이 대량살상무기를 테러단체에 판매해 대(對)테러전이 발생할 경우 이를 대간첩작전과 같은 평시 작전으로 보면 한국이 작전권을 갖고 주도해야 한다. 반대로 전시로 보면 한미연합사의 지휘 아래 실질적으로는 미국이 작전권을 갖는다.

이는 겉으로는 쉽게 조정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만약 이러한 사태가 북한의 체제위기와 겹쳐지면서 위기에 처한 북한이 중국에 지원을 요청하고 중국이 개입하게 된다면 상상할 수 없는 복잡성을 띠게 된다. 이럴 경우 우리 군이 독자적으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장담할 수 없으며, 이 같은 위기 상황이 되면 우리는 우리의 주권을 따질 때가 아니라 미국의 도움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게 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한.미 양국이 이번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이 문제를 둘러싼 이견을 봉합, 연구하기로 합의했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한.미 간 균열을 해소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굳이 찾는다면 한.미 동맹관계에 노정된 현안을 양국이 일시적으로 봉합해 11일로 예정된 정상회담에 좋은 분위기를 제공했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다.

치밀하게 작성된 '개념계획'은 언제라도 작전계획으로 전환될 수 있다. 때문에 양국이 앞으로 긴밀한 공조와 협조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가지 못한다면 오히려 더 심한 고통이 서로에게 올 수도 있다.

친구 사이에도 그러하듯 동맹 간에도 굴곡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진보진영의 지지를 받고 출범한 노무현 대통령과 신보수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재선된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시각에는 큰 차이가 있다. 대북관만 보더라도 민족공존에 우선순위를 두고 절대 평화에 강조점을 두는 노대통령에 비해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 반테러전을 강조하는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에서 보듯 더욱 강력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부시와 미국의 일방주의적 정책이 현재 우리 국민에게 한반도 위기시 과연 미국이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이익과 평화를 대변하는 세력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대로 한국의 이런 의심이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이 정말 그들의 친구인지 의심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양국이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근본적인 가치를 공동으로 추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동맹이란 이익과 가치를 공유할 때 건실하게 발전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양국 정상은 대화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수단과 방법에서의 차이를 줄여나가야 한다. 또한 서로가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신뢰를 회복하고 양국 국민에게 동맹의 건전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11일 한.미 정상회담은 양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시키는 기회가 되어야만 한다.

서창록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