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反기업 정서' 위험수위] 2. 왜곡된 기업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기업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지만 우리 국민은 기업을 봉(鳳)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지나치게 강한 것 같다." 삼성 관계자의 말이다.

벤처기업인 디지털노믹스의 윤정호(36)대표도 "기업의 입장에서 공익성보다 더 강조돼야 하는 것은 사익성인데, 우리 국민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한.중.일 3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기업은 사회적 공기(公器)인가'라는 물음에 한국인은 맞장구를 쳤지만 중국인은 아니라고 답했다.

◇기업을 사회적 공기로 인식=경영학에서 기업을 말할 때는 '계속기업(going-concern)'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기업의 목적은 영속성과 발전이란 뜻에서다.

한국인 중 이렇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기업의 목적은 기업의 이익과 발전'이라고 답변한 사람은 13.2%에 불과했다.

'사회와 국가의 발전(37.5%)'이 가장 높았다. 반면 중국은 '기업의 이익과 발전(46.4%)'을 가장 많이 꼽았고 사회와 국가의 발전은 셋째였다.

기업의 목적에 대한 인식이 일반인과 기업 사이에 차이가 남에 따라 한국인들은 현재 기업 활동에 대해 불만이 크다. 한국인 66.2%가 '기업이 제 역할을 잘못 하고 있다'고 답했고, 그 결과 한국인 절반 가량(47.9%)이 기업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

반면 중국은 '기업이 제 역할을 잘못하고 있다'와 '기업을 안 좋게 생각한다'가 각각 17.6%, 10.8%에 그쳤다.

최종원 서울대 교수는 "한국인은 기업을 사회적 공기로 인식하고 현재 이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못한다며 불만이 많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국경제연구원 황인학 박사는 "반기업 정서보다 더 심각한 것은 기업을 국가 발전의 도구로 보는 국민의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키느냐 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은 이익을 재투자해야 발전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럴 경우 기업이 제 역할(국가 발전)을 하지 않는다며 반기업 정서가 더욱 심해지는 까닭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얘기다.

◇사회 공헌관도 문제=한국인들은 기업의 공익성을 강조하면서도 그 결과 나타날 불이익이 있다면 이는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기업이 자선사업을 할 경우 그 돈을 회사 자금으로 충당했다고 하자. 그럴 경우 회사의 이익이 줄어들어 주주 배당금이 적어지고, 임금 인상을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또 제품값을 올려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도 있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부원장은 "국민이 이런 흐름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들이 탁아소 사업을 하느라 제품 가격을 올릴 경우에도 탁아소 사업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에 한국인은 36.4%만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또 '기업이 이윤 극대화 외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한국인은 근로자 복지(64.9%), 사회사업(56.8%), 인력개발(40.6%) 등을 꼽았으며 '안해도 된다'는 응답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중국은 사회사업을 해야 한다(57%)와 하지 않아도 된다(43%)는 의견이 비슷했다. 사회공헌은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얘기다.

최형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