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305)제76화 화맥인맥(24)|월전 장우성|선전수상 답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나는 41년 20회 선전부터 44년 경희 선전까지 연4회 특선으로 44년에 선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41년 20회 선전서는「푸른 전복」으로 차석상인 총독 상을, 42년 21회에는「청춘일기」 로 최고상인 창덕궁 상을, 43년 22회에는「화실」로 또 한번 최고상인 창덕궁 상을 받았다.
마지막이 돤 44년 23회 선전에는「절」를 출품, 이 작품이 특선에 올라 연 4회 특선기록으로 선전 내규 2조1항(연 4회 특선 자는 추천작가가 된다는 규정)에 따라 44년 선전 개전 직후에 추천작가가 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45년 해방이 되던 해는 2차대전말기의 급박한 상황으로 선전이 열리지 않아 추천작가로 작품을 내지 못했다.
그렇게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는데도 작품을 내지 못해 아쉬운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내 날아든 광복의 쾌 보는 나뿐이 아닌 모든 민족의 가슴마다에 전해져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을 만끽했다.
43년 22희 선전 때는 내가 수상자 대표로 답사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때까지 한국인이 답사한 일이 한번도 없었는데 그해에는 공교롭게도 내게 그 책임이 떨어졌다.
22회 선전 입선이상의 작품이 전시중인 때 선전을 주관하던 총독부 사회교육과에서 내게 총독부에 나와 줄 것을 요청하는 통지서가 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지정한 시간에 들어가 봤더니 수상자대표로 답사를 하라는 것이었다.
천만뜻밖의 일이었다. 지금까지 선전에서 한국인이 수상자 대표 답사를 한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내게 그 일이 맡겨진 것이다.
나는 일본말이 유창하지 못 할 뿐 아니라 일본인 수상자도 많은데 왜 하필 나에게 답사를 하라고 그러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일본말에 능숙한 정말 조를 대신 천거했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당장 내일 할 일을 놓고 오늘에야 무엇이 어쩌고저쩌고 하고 있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연설을 하는 것도 아니고 써서 읽으면 되는 일이어서『하겠다』고 하고 화실에 돌아와 원고를 쓰느라 진땀을 뺐다.
이당(김은호)선생이나 계시면 가서 의논하련만 전주 화회(지방 전시)에 내려가고 안 계셔서 혼자 끙끙 앓았다.
나는 장황하지 않게 상을 주어서 고맙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겠다는 내용으로 짤막한 답사를 만들었다.
원고를 만들어 놓고 전당포에 가서 모닝코트를 빌었다. 답사를 할 때는 모닝코트를 입은 정장차림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당포에서 빌어 온 모닝코트를 다림질해서 쭉 빼 입고 안주머니에 답사를 쓴 두루 마리를 넣고 총독부 제1회의실에 나갔다. 식장에 들어섰더니 앞줄 의자에 이당 선생이 앉아 계셨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내가 답사를 한다니까 전주에서 일부러 올라오신 모양이구나 생각되어 고맙기까지 했다.
나는 얼른 이당 선생 앞에 가서『언제 올라 오셨습니까』하고 정중하게 인사드렸다. 그랬더니 이당 선생은 대답도 않고 못 본 체하고 딴전만 피우셨다.
여러 사람 앞에서 무안을 당해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시간이 없어 바로 내 자리에 와 앉았다.
정무총감이 나와 특선 장·창덕궁 상·총독 상을 주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나서야 수상자 대표답사가 있었다.
생전 처음 입어 보는 모닝코트여서 좀 어색했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똑바로 서서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여태까지 답사보다 간결해서 좋았다는 평을 들었다. 시상식에는 현초(이유합)도 그해 총독 상을 받아 나와 함께 참석했다.
현초와 함께 복도를 내려오는데 이당 선생이 앞서 내려가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또 인사드렸더니 받지도 않고 휭 하니 가 버리셨다.
나는 모닝코트를 입은 채 시내를 쏘다닐 수 없어서 혜화동 화실로 옷을 갈아입으러 오고, 현초는 이당 선생 댁으로 갔다.
얼마 후 이당 선생 댁에 다녀온 현초가 내 화실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당 선생이 이만저만 화가 난 게 아니라고 전했다.
『답사하려면 의논해서 하지 않고 제가 뭐 잘났다고 마음대로 하느냐』고 역정을 내시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현초에게『어젯밤에 전주에서 올라오셨다면서 언제 의논할 겨를이 있었느냐』고 반문했다.
또 갑자기 일어난 일이어서 솔직히 말해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이 일 때문에 나는 이당 선생 댁 사랑방 이묵헌에서 들려 오는 장대 같은 욕을 감당해야 했다.
전주에서 올라온 서당(김희순)·심향(박승무)·소정(변관식)이 한자리에 앉아 험담하는 「죽일 놈」이라는 욕까지 들어야 했다.
별 잘못도 없는데 이런 소리를 들어 야속하기까지 했다. 나는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이당 댁에 잘 가지 않았다. <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