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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10명 중 10명 "연내 국내 경기 회복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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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은 다른 신흥국과 다르다. 자본유출 사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9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국경제설명회(IR)에서 한 말이다. 3600억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액, 30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경상수지 흑자, 세계 최고수준인 재정건전성 등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강한 만큼 한국은 저성장의 덫에 걸린 세계경제를 이끌 견인차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 7월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면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4.0%로 제시했을 때만 해도 최 부총리의 자신감은 시장을 안심시켰다. 주가도 급등했다. 그러나 불과 석 달 남짓 사이 상황은 반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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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이고 있는 증시가 이를 보여준다. 최근 국내 증시는 급락하다가 조금 반등하는가 싶으면 또다시 급락하기를 반복했다. 시가총액 1·2위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주가는 잇따라 연중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급기야 13일엔 코스피 지수 1930선이 깨지며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스닥 지수는 7월 31일 이후 처음 530선으로 주저앉았다. 이렇게 증시가 오락가락하는 건 국내외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한국을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소식이 전해지면 주가가 올랐다가 조금만 나쁜 소식이 나오면 풀썩 주저앉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해외 시각이 싸늘해졌다. 1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 27개 해외 경제예측기관이 내놓은 내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3.8%였다. 한국은행도 오는 15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8%에서 3.5∼3.7%로 수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서 7일엔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 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예상보다 취약한 데다 악화될 위험이 여전하다”며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0%에서 3.8%로 내렸다. 한국 같은 수출주도형 경제에 세계 성장률 하락은 치명적이다. 그만큼 한국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

 본지가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10명을 대상으로 한국 경제와 증시 전망에 대해 설문한 결과도 비슷하다. 올해 안에 국내 경기가 회복할 것으로 보는 센터장은 한 명도 없었다. 9명이 내년 상반기(5명)와 내년 하반기(4명)에나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 명은 당분간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신지윤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금리 인하와 정부의 경기활성화 대책이 시차(6개월)를 두고 경기회복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며 “다만 내년 상반기에 미국의 금리 인상 같은 불확실성을 반영할 것으로 예상돼 실물 경기는 하반기나 돼야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홍성국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내년에도 가시적인 경기회복은 어려울 것”이라며 “밋밋한 경기 흐름을 뉴 노멀(New Normal)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한국 경제호’ 앞엔 유로존 경기침체, ‘수퍼 달러’, 엔저라는 삼각 파도가 기다리고 있다.

최근 유럽 경기 침체 우려의 진원지는 독일이다. 독일의 8월 산업생산은 전달보다 4.0% 감소했다. 시장 전문가 예상치(1.5% 감소)를 크게 밑돈 것으로 2009년1월 이후 감소폭이 가장 크다. 8월 공장수주도 전달보다 5.7% 줄었다. 이 역시 2009년 이래 최대 감소폭이다. 그동안 침체에 빠진 유럽 경제를 지탱한 건 탄탄한 경제력을 자랑한 독일이 버텨준 덕분이었다. 그러나 독일마저 침체 조짐을 보이자 유럽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 전반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유럽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가장 큰 교역국인 중국이 타격을 입는다. 이는 중국과 교역비중이 큰 한국과 같은 신흥국 경제에도 침체 도미노 현상을 불러올 수 있다. 이준재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럽 수출 비중이 25%에 달하는 중국이 유럽 경기 침체로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며 “중국이 최근 수출 경쟁력 약화로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 경기 악화로 타격을 입어 더욱 문제”라고 말했다.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가 오르는 ‘수퍼 달러’ 와 엔저는 한국 수출기업에 외화내빈의 환경이다. 달러 강세는 미국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기업에 호재다. 그러나 엔화가 더 빨리 떨어지는 바람에 일본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한국 기업은 앞으론 남고 뒤론 밑지는 장사가 불가피해졌다. 대표기업의 실적부진 전망이 잇따르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KDB대우증권에 따르면 3분기 코스피 상장기업의 당기순이익 전망치는 약 22조4000억원이다. 한 달새 1조9000억원이나 하향 조정됐다. 특히 삼성전자·현대차 등 대형사의 순이익이 지난해 3분기에 비해 15% 이상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업체와 내수업체 실적이 극명하게 갈렸다. 정보기술(IT)·조선·반도체 등 수출주는 일제히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고, 증권·화학·화장품·의류 등 내수주는 그나마 선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60%, 현대차는 17%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한득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요즘처럼 세계 경제가 침체됐을 때는 구매 충성도가 높은 글로벌 1등 기업만 살아남기 마련”이라며 “결국 세계 시장에서 2·3위권을 두고 경쟁하는 삼성전자·현대차 등 국내 대표 기업은 고전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창규·염지현·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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