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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평양의 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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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원산에 건설 중인 한 발전소는 2005년 1월 중국 랴오닝성 공안국의 한 사업부와 별난 계약을 했다. 중국이 전력설비를 대주면 아연.금 같은 광물을 주기로 했다. 몇몇 광산과 계약도 했다. 필요한 외화가 없다고 광산 개발에 뛰어든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2002년 7.1 경제조치 뒤 북한 기업들은 '먹고 살려고' 전공 아닌 곳에 마구 손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북한의 시장과 자원이 중국 자본에 소리없이 넘어가고 있다.

옌볜 천지공업무역유한회사는 2003년 북한 무산 광산에 1억 위안(약 1200만 달러)을 투자해 2004년 60만t, 2005년 200만t의 철광을 가져간다. 산둥성 초금그룹은 지린성과 양강도 혜산 청년동광에 2억2000만 위안을 투자했다. 푸젠성 7개 기업도 2004년 8월 북한의 무연탄.플라스틱 공장에 117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런 계약의 효력이 10~30년이니 장기 자원기지가 되는 셈이다.

자원뿐 아니다. 저장성 원저우의 중쉬그룹은 2003년 북한 최대인 평양 제일백화점의 운영권을 따냈다. 유통.서비스가 전공인 남방계 기업의 전형적 전술이다. 3억~15억 달러로 추산되는 평양의 '장롱 속 달러'가 목표다. KOTRA는 120여 중국 기업이 진출했고, 그 규모를 2004년 1억7350만 달러로 집계했지만 실제 통계는 아무도 모른다.

무역 부문도 간단치 않다. 2003~2004년 북한 공식 무역에서 중국의 비중은 33%에서 48%로 치솟았다. 수면 아래선 더 거세다. 신의주와 단둥 사이엔 비공식 무역이 활기차다. 북측 강안을 따라 작은 항구들이 있는데 이를 무대로 300여 크고 작은 배들이 뛴다. 식량.생필품.전자제품이 '배떼기'로 북에 넘어간다. 밀거래다. 중국에서 북으로 들어가는 공식 물자가 하루 10t 트럭 300여 대 분량이니 밀무역 규모가 상당하다. 북핵 문제로 남한이 뜸한 사이 중국발 '경제 황화(黃禍)'가 북한을 휘감는 꼴이다.

지난 주말 열린 외교안보연구원 주최 '2005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2차 네트워크 세미나'에서도 그런 걱정이 컸다. 한 참석자는 "구한말 열강의 침탈이 연상된다"고 했다. 문제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눈을 부릅뜬 미국을 제치고 남북 교역 활성화에 나설 수도, 그렇다고 손을 놓아 중국을 방치할 수도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안성규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