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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에서「실감」까진 시간 걸려…절약으로 맞서는 길뿐|"가계여력" 올해엔 어려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새해가 왔다 하여 살림살이가 활짝 펴지리라고 생각해선 안된다. 불황의 긴 터널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빠져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출구가 안 보인다.
경제가 작년보다 조금 나아졌다 해도 살림살이로 실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79년이래 연4년째 불황이기 때문에 같은 불황이라도 빠듯함은 더 느낄 것이다.
고통분담이니, 허리띠를 졸라매자 느니 하는 말들을 더 들어야 하고 그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겪을 수밖에 없다.
금년 하반기부터는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예상도 있으나 확실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고 안전하다.
경기가 웬만큼 좋아져선 그 동안에 겹친 주름살을 펴기도 힘들다. 계속된 불황으로 정부도, 기업도, 가계도 적자가 쌓여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 떨기 까진 생활수준을 높일 여력이 없을 것이다.
정부재정은 그만 두고라도 누적된 기업 적자나 근로자 감봉을 원상 회복하려면 앞으로 2∼3년은 좋이 고생해야 한다.
3백억 달러가 넘는 외채는 내핍을 강요하는 절대명령이다.
지난 몇 년의 어려움도 그렇지만 금년의 어려움도 분수없이 덤벙 댄데 대한 인과응보라 할 수 있다. 미리 호사를 부린 것을 연 부로 갚고 있다고 할까.
금년 1년 동안 외채원리금으로 빠져나갈 돈은 무려 60억 달러(원금 21억 달러·이자 39억 달러)에 달한다.
국민1인당 11만7백원 꼴이다. 금년 1인당 GNP 1백35만원의 8%선이다. 그만큼의 소득이 과거의 빚 때문에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그것뿐인가. 세금부담도 국민l인당 26만l천원. 5인 가족 한집에 1백30만5천원씩 돌아간다. 작년보다 한 사람 당 5만원 가량 늘어난 것이다.
신설될 교육세를 비롯하여 하수도 세 등 이 겹쳤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을 땐 쓰임새에 비례하여 많이 벌면 되지만 금년엔 그러기 어렵게 되어 있다.
금년에 7%의 성장을 한다 해도 일자리는 많지 않을 것이다.
기업들의 수익이 좋지 않은데다 아직 새 사업을 벌이는「무드」가 안 일어나고 있다.
금년에 45만 명 정도가 새로 직장을 얻어도 필요한 일자리가 더 많기 때문에 약 66만 명의 실업자가 날 것이다. 근로 가능인구의 4.4%다. 사람이 남아도니 임금인상도 크게 기대할 수가 없다.
많이 올려 줄 수 있는 기업도 드문 실정이지만 정부에서도 물가안정을 위해 10%안의 인상을 종용하고 있다.
때문에 근로자들의 임금인상 율은 l5% 안팎에서 머무를 전망이다. 버는 것에 제약이 있으니 믿는 것은 물가안정뿐이다.
집 값과 생필품 값이 안 뛰어야 하는데 집 값은 소득에 비해 워낙 높이 올라 있는 데다 실질구매력이 없어 크게 오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금년에 주택경기를 올린다고 섣부른 정책을 쓰거나 돈을 턱없이 많이 풀면 위험한 면도 있다.
정부는 금년 통화운용은 매우 빠듯하게 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따라서 돈사정도 어렵겠지만 그것은 인플레를 잡기 위하여 불가피하다.
생필품은 농산물이 불안하다. 작년에 너무 많이 떨어져 금년에 정상으로 돌아온다 해도 상당한 감 세를 보일 것이다. 또 기름 값·철도·전기·수도요금 등 이 작년 12월에 이미 올랐으므로 금년엔 높은 수준에서 출발해야 한다.
공산품들도 워낙 불경기여서 제값을 못 받고 있는데 금년에 경기가 좋아지면 그것도 꿈틀할 것이다.
따라서 금년 경기상승이 V자형으로 갑자기 일어나는 것도 위험하다. 작년에 불황이라 해도 서민들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l차 오일쇼크 때와는 달리 물가폭등이 겹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년에도 유가·국제원자재 값·국제금리·작황 등 여러 아슬아슬한 요인이 많지만 정부가 10% 물가안정을 내세우고 거기에 모든 정책을 집중하겠다 하니 그걸 믿고 한번 기다려 볼 수밖에….
금년물가가 10%내로 억제되어 고원안정이라도 이룩되면 어려운 대로 버틸 수가 있겠지만 그것이 안 되면 무척 고생해야 할 것이다.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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