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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나도 빚에서 자유롭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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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늪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게 마련이다.

3백만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가 그런 경우다. 신용카드 돌려 막기며 고금리 사채 같은 지푸라기에 매달리다 보니 어느새 빚은 몇 곱절로 불어나 스스로 감당 못할 지경이 돼버렸다. 이제 그 깊은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튼튼한 동아줄을 잡아야 한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엔 동아줄이라 할 만한 신용불량자 구제 시스템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은행과 신용카드회사들이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대환(貸換)대출과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 금융권이 연합해 지난해 10월 초부터 실시 중인 개인워크아웃(개인신용회복지원제도)이 고작이다.

얼핏 잘 짜인 듯한 구색을 '고작'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제도들의 수혜자가 되는게 상당히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과 카드회사, 개인워크아웃을 주관하는 신용회복지원위원회는 공통으로 두가지 지원조건을 내세운다.

첫째는 최저 생계비 이상의 지속적인 수입, 둘째는 생활의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빚을 기어이 갚고야 말겠다는 의지다. 금융회사로서는 이래야만 상환 기한을 늘려주고 연체이자 부담을 줄여주더라도 언젠가는 빚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건이 까다롭다고 '앓느니 죽지'라며 지레 포기할 일은 아니다. 어느 정도 조건이 맞는다면 적극적으로 현행 지원제도에 도전해 보자.

◇은행 및 카드회사의 자체 지원=은행 및 카드회사들이 시행 중인 대표적인 지원제도는 대환대출이다. 말 그대로 연체된 채무를 새로운 대출로 전환해주는 것이다.

금리는 회사별로 다른데 카드 대금은 연 17~22%, 은행 가계대출의 경우엔 연 12~17% 정도다. 대환대출의 금리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사채(합법적인 대금업체는 연 66%, 불법 사금융은 그 이상)나 일반적인 카드 연체금리(연 24~25%)보다는 낮다.

1~3개월간 연체하는 도중 대환대출을 받는다면 신용불량자 등록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대환대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대부분 보증인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보증을 꺼리는 시기에 보증인을 마련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회사마다 연체 금액 중 일부를 갚거나 대출한도가 낮을 경우엔 무보증으로 대환대출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보증인을 반드시 세우도록 했던 하나은행의 경우 최근 카드대금 연체자에 대해 무보증 특별대환대출을 실시하고 있기도 하다.

대환대출 외에 국민.우리은행은 신용불량자에 대한 자체 신용회복지원제도를 시작했다. 두 은행 모두 다른 은행엔 채무가 없고, 연체 이자 등을 포함한 총 채무가 일정 금액(국민은행은 5천만원, 우리은행은 2천만원)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심사를 통해 향후 수입으로 빚을 갚아나갈 수 있다고 판단되는 신용불량자에 대해 이자율 조정, 채무 분할상환 등의 혜택을 준다.

◇개인워크아웃=두 곳 이상의 금융회사에 빚을 진 신용불량자라면 금융회사의 자체 지원제도를 이용하기 힘들다. 이런 사람들에겐 현재로선 지난 해부터 금융회사들이 공동으로 실시 중인 개인워크아웃이 유일한 탈출구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악덕 채무자가 아니고 지속적인 수입이 있어 빚을 갚아나갈 능력이 된다고 판단되면 상환기간 유예 및 분할상환, 이자율 인하, 원리금 감면 등의 지원을 해준다.

금융회사의 자체 지원제도와 달리 이 제도의 대상자로 확정되면 즉시 신용불량자에서 해제되기 때문에(단 기록은 일정기간 보유) 빚 독촉에서 해방되는 것은 물론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단 위원회에서 정해준 계획대로 분할상환을 하다가 원리금을 3개월 이상 제때 못내게 되면 지원이 취소되고 원래의 신용불량 상태와 채무조건으로 되돌아가게 되므로 유의해야 한다.

윤병묵 신용회복지원위원회 기획팀장은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매달 수입에서 최저 생계비 수준을 제외한 나머지를 빚 상환에 쓰도록 분할상환 계획이 짜인다"며 "가족 모두가 합심해 빚을 갚고 새 생활을 하겠다는 각오가 없다면 지원프로그램을 제대로 이행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지원제도의 대상자로 선정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신용불량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불법 사금융의 유혹을 이겨내라▶주말, 야간 부업을 통해 수입을 늘려라▶차부터 팔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휴대전화는 받을 때만 쓰고 공중전화를 사용하라▶커피나 담배 등 일상적인 소비부터 줄여라▶되도록 외식하지 말라▶필요한 물건은 중고시장과 재활용센터에서 사라.

신용회복지원위원회가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신용불량자들에게 실시하는 교육시간에 나온 고언(苦言)들이다.

글=신예리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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