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년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사방에서 망년회가 한참이다. 묵은 한해를 보내고 새해의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자는 고상한 뜻을 가진 것이 망년회지만 친한 이들끼리 모이다보면 반드시 그렇게만은 안된다.
한국적 망년회의 진풍경은 마음껏 마시고 떠들다가 이내 인사불성이 돼 새해 아침을 어수선안 가운데 맞는 것이리라. 시속의 말로 「너무하다」는 느낌도 든다.
우리 망년회가 이처럼 요란하게 된데는 몇가지 원인이 있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신년정초 사흘이 공휴일인데다 그믐날 밤부터 통항금지가 해제되는 때문이다. 생활에 쫓기고 얼에 억눌렸던 사람들의 마음이 일시에 해방감을 맞은 듯 이상한 작상가 곳곳에서 연출되곤 한다.
그래서 요즘엔 가족끼리 모여 오붓하게 섣달그믐밤을 보내려는 모습이 눈에 띄게 나타난다. 대규모 식당이나 연회장을 갖춘 호텔에서도 가족동반으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이런 현상을 재빨리 포착한 상혼이라고나 할까. 하여간 크리스마스 이브가 점차 조용해지듯이 망년회풍경도 차츰 점잖아 지는 것은 사실이다.
화가 이승만의「풍류세시기」에 보면 세구는 절간 여승들의 시주집을 찾는 바쁜 걸걸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약 60년전까지의 서울픙속이다. 이때 여승은 튀각·강정·튀김 등 세찬음식을 시주전의 다과에 따라 나눠준다. 단골가게에서도 약간의 찬물이 들어오고 한약방에서도 인삼이나 설탕을 보내온다.
그런가하면 「묵은세배」도 있다. 섣달그믐날 친척어른이나 세교로 맺어진 집안을 찾아가 세배를 드리는 것이다. 묵은세배의 진의는 혹 형세가 궁색하여 곤란이나 당하지 않을까 그집의 형세를 두루 살피고 곤란한 빛이 보이면 얼마간의 세의금을 방석밑에 찔러 넣고 물러 나오는 것이다.
훈훈하고 은근한 그믐날의 정취련만 신력에 밀리는 구력처럼 이런 모습도 사라지는 것 같아 섭섭하다.
섣달그믐날밤에 잠을 자버리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우리 풍속처럼 프랑스 사람들도 크리스마스 이브나 세밀엔 놀며 마시며 밤을 샌다. 이때 먹는 식사를 레베용(Reveilon)이라 하는데 주로 카페나 레스토랑이 그 무대가 된다.
런던주민들은 트러팰거광장이나 세인트폴대성당앞에 모인다. 이윽고 그믐밤 자정, 시계가 12시를 가리키고 종소리가 울리면 「해피·뉴·이어」를 외치며 악수를 교환한다.
美國에서도 바니 레스토랑에 모인 시민들이 밴드연주에 맞춰 스코틀랜드 시인「R·번즈」의 올드랭자인을 합창한다.
『옛친구는 잊혀져 생각도 나지 않는가』 노래가 끝나면 다같이 함성을 올리며 파티를 계속한다.
비록 한해를 보내는 감회가 만감이 교차할 지라도 이처럼 새해를 맞는 모습은 활기차고 정중하다. 그믐이 되기 며칠전부터 벌어지는 망년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할지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