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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뭐야..될대로 되라지...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며칠 전 국립암센터의 비갑상선 전문의사들이 주도한 회의에서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증상이 없는 환자의 갑상선 검진 권고안 문제에 대하여 최종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예측한대로 핵심 내용은 지난 8월에 발표한 초안과 별로 바뀐 것이 없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지난번의 좀 위협적이고 황당한 표현이 좀 부드럽게 고쳐진 것 정도다.
눈가리고 아웅 한 것이다.

이 회의는 "조기 갑상선암은 진단도 말고 치료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 무슨무슨 연대 멤버의 주장을 실현 하려는 국가기관의 의지가 담긴 회의다.

물론 구색 맞추기 위해 가정의학과, 예방의학과 외에 영상의학과, 내분비내과, 갑상선학회, 갑상선내분비외과 학회에 소속된 전문의사들도 참여시키기는 했다.

12명이 참여한 회의구성의 핵심은 국립암센터를 중심으로한 비갑상선의사들이고. 나머지는 소수의 젊은 갑상선전문의사들이다.

갑상선 전문의사들은 차려놓은 밥상에 수저들고 그냥 앉은 격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이들이 소속 학회 회원들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필자의 제자중 한명인 N교수만이 이 검진검고안의 부당성에 대하여 항의를 했다고는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그저 시간만 떼우다가 주최 측이 마련한 안대로 그냥 결정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민주주의 원칙대로라면 이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이 이들 멤버가 소속된 학회에서 인준을 받아야만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데,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그냥 10월중에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사람생명에 관한 중차대한 일을 이렇게 뚝딱 결정해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릴 모양이다.
하긴 지난 8월에 국립암센터에서 초안을 마련하여 이를 언론에 발표했으니까 이미 이들이 노린 효과는 볼대로 다 봤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와서 가타부타 말해봐야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최종 결정안이라고 내어 놓은 것도 그냥 절차를 밟은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부기관이 하겠다고 하면 그 것이 이치에 맞든 맞지 않든 그냥 밀고 나가면 되는 모양이다.

이들 주장대로 하면 증상이 없는 갑상선암 환자는 이제 증상이 있을 때 까지 기디려서 암이 악화 되어 제대로 고치지 못할지경이 되어야 진단하고 치료해야 되는 모양이다..
우리의 경험과 미국의 문헌을 봐도 대부분의 갑상선암환자는 암이 많이 진행되기전까지는 증상이 없다(J NCCN 2010;8:1228~74).
그래서 이번 결정 처럼 증상이 없는 사람에게 검진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환자에게는 비극이고 악몽이 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결정을 하기전에 과연 증상이 없는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는 상태인지 조사를 먼저 해보고
그 결과에 따라 진단괴 치료가이드라인을 결정해야 하는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급한지 부랴부랴 뚝딱 결정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기라.

증상이 있어야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는 영국의 갑상선암 환자들을 보면 이런 결정을 이렇게 쉽게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영국이 가는 길을 따라 갈터이니까 1년 생존율 83.4%, 5년 생존율 남자 74.2%, 여자 78.9%(Cancer Research UK)로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니까 우리나라 갑상선환자들의 희생이 이 정도로 많이 나야 정신을 차리게 될 것이다.

그때가서 오늘의 이 결정을 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아니 사람이 잘못되고 난 다음에 책임을 물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더 기가 차는 것은 국회에서까지 이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이다.
세계 어느나라에서 전문적인 이런 문제에 전문 학술단체를 제쳐두고, 국회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나라가 있단 말인가.
어느 야당 의원의 발상이라고 하는데 정말 우리나라 국회는 기발하고 기가 차다. 할일이 그렇게 없는지.....무슨 증인을 불러 과잉진단 문제를 따져 보겠다고 한단다.
문제의 핵심을 어떻게 1회성 증인의 증언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 문제의 증인으로 국립암센터의 서00, K대의 기인의사를 부를 예정이라고 하니 결론은 이미 정해놓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한쪽의 이야기를 그것도 지극히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의 얘기만을 듣을 예정이라고 하니 결과는 안봐도 뻔할 뻔자다.

필자는 이 나이까지 그래도 우리 사회에는 균형잡힌 시각을 가진 올바른 사람들이 주류사회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고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나 하는 절망감이 엄습해 오는 것을 숨길 수 없다.
필자 혼자서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고 나니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이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를 책임질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의지로 버텨 본다 하지만 어려운 것을 어렵다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알게 뭐야.. 될 대로 되라지... 우리나라 갑상선암 환자의 운명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않은가...."
올해도 어김 없이 가을병이 필자를 덮치는 모양이다.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 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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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교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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