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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4)신문화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술평론가들하고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내 성품 탓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일부러 사귀려 들지않아 그저 무덤덤하게 지낸 것같다.
후소회를 만들고 생전처음 신문기자와 평론가들을 만나 교제 술을 마셨지만 그렇다고 금새 친해질 수는 없었다.
그 무렵 신문에 평을 쓰던 미술평론가로는 조선일보에 석영 안석영, 웅초 김규택과 매일신보에 윤희순, 정현웅등이 있었다.
안석영과 윤희순은 주로 동양화평을 많이 썼다. 석영은 소설도 쓰고 미술평론도 했을뿐 아니라 영화감독도 한 재주꾼이었다.
윤희순은 서화협회 정회원으로 서양화가였던 사람-.
웅초는 몸집이 어찌나 컸던지 곰처럼 뒤뚱거린다고 웅초란 아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로 신문에를 그리면서 간혹 평을 정현웅도 삽화가였는데 이따금 평을 쓴 사람이다.
이들은 모두 나보다 10여세 웃사람들이서 우선 연령적으로 친하게 지낼 터수가 못되었다.
청전·심산은 신문사에서 삽화를 그려서인지 이들과 술 친구가 되어 늘 붙어다니다시피했다.
묵노(이용우)는 신문사에 별관계는 없었지만 평론가들과는 비교적 가까이 지냈다.
윤희순은 36년 마지막이 된 15회 협전에 내가 출품한 『상섭』을 『주목할만한그림』이라고 평을 써줘서 나도 그뒤부터 그를 주목할만한 평론가로 보고 있었다.
『상섭』은 옆으로 늘어뜨린 나뭇가지에 새까만 팔가조가 앉아있고 그뒤에 담쟁이 덩굴을 그린 것이었다.
양화를 전공한 그가 내 그림을 어찌보았던지 호평을 해서 상당한 용기를 얻었다.
윤희순은 날카롭고 비판적인 면보다는 미술사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는 원만한 평론가였다.
동아일보는 소위 손기정 일장기말살사건으로 청전이 화원자리을 물러날 때까지 삽화는 주로 청전이 그렸었다.
청전의 삽화는 동양화적 요소가 많아 사람의 모습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래서 청전의 삽화를 비꼬는 사람들은 그의 인물화를 「목이 없는 곱사등이」라고 몰아붙였다.
반면에 웅초의 삽화는 사실적이어서 인기가 좋았다. 대생에 기초를 둔 서양화기법에 풍속·인물화적 요소를 갖추고 있어 신문독자들이 해학적이라고 퍽 좋아했다.
웅초는 눈까지 나빠 돗수가 높은 돋보기를 걸치고 뒤뚱거리면서 걸어다녔다.
두주를 불사하는 애주가였고 누구에게나『허허』하는 호남자였다.
서양화가였던 송병돈도 가끔 선전평을 썼다. 그는 후에 서울대미대서양화과 주임교수로 나와 함께 근무했다.
꼽추화가였던 서산 구본웅도 미술평론을 했다.
이에 평론가들은 자기생각대로 평을 쓰고, 더러 화가들과 어울려 술도 마셨지만 평자나 화가나 피차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야기는 하지않았다.
4회 후소회전때 윤희순은 매일신보(41년 11월14일자)에 다음과 같은 평을썼다.
『허민씨「적광」은 맑고 윤택한 정서의 열매이며, 이완용씨 「연계」는 사심없는 예술탐구의 성과로서 이러한 태도는 처음에 가질 수 있으나 기교가 늘고 전람회 입상을 하게되면 잊어버리는 수가 많다.
회장효과의 지나친 사욕때문에 예술의 비속화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현대 작가들이 서로 경계할 점은 이것이다.
백윤문씨, 장우성씨, 이유태씨는 현대적 감각을 가졌을뿐만 아니라 세련된 기법을 가진 우수한 멤버들이다. 백윤문씨 (「초추」)는 간소한 필법으로 용하게 분위기를 내었고, 묵빛은 그대로 한개의 품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작년의「백합화」는 꽂이 크고 중심이 없으므로 검은 잎이 눈에 거슬리지 않았으나 이번 것은 멀리서 보면 그림자같이 평면으로 보이고, 따라서 화면의 일요소로서가 아니라 묵 그것만의 저회미가 있어보인다. 대담한 게획이기는 하나 매너리즘에 떨어지기 쉬운 위험을 가졌다. 동양화에 있어 묵은 생명이며 그림으르 좋은 연구대상이다. 여기에 착상한 것은 좋은 일이다.
장우성씨 「여와 선인상」은 인물화의 독단장이다. 이당의 미인도를 현대화하기에 성공한 훌륭한 후계적 작가라 하겠다. 인물데생과 의피도 자신있는 묘사력을 가졌으나 구도와 색채가 불안정하고 희박한것은 반성할 점이다. 이유태씨 「산백합」은 아담은 하나 힘이 없다. 화면이 제재를 담기에 과대한 까닭이리라. 김기창씨는 「백호·청룡일대」에 힘을 들였음은 알겠는데 서양화식 수법을 모방한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대체로 씨는 거칠다. 이런 세찬 감정은 대작에서 성공할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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