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련의 트렌드 파일] 이야기가 있는 광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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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마법천자문'의 인기가 올해도 여전하다. 8권까지 나올 만큼 롱런하고 있는 '마법천자문'은 초등학생들에게 만화를 통해 흥미를 유발하면서 자연스레 한자를 익히게끔 안내한다. 이런 경향은 과학이나 역사 서적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서적 시장의 불황을 뚫을 수 있는 수단으로 만화가 부각되고 있다니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

패스트푸드 업체 버거킹에서는 얼마 전 '복종하는 닭'이란 특이한 사이트를 개설했다. 어떤 명령어를 입력하면 복종하는 닭이란 놈은 그에 맞는 기기묘묘한 행동을 보여준다. 네티즌과 복종하는 닭의 상호작용은 그 자체로 재밋거리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버거킹 측은 맨 처음 단 20명에게만 사이트 정보를 알렸는데, 불과 1주일 만에 4600만 여회, 3주 후엔 무려 1억4300만 여회의 클릭 수를 기록했단다. 재미있는 이야기란 이처럼 폭발성을 갖고 있다.

이런 예들은 '스토리 텔링' 마케팅의 전형이다. '어떻게 좋아'라며 정보를 주입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게 아니라 때론 감동적인 이야기로, 때론 예측불허의 미스터리 스토리로 자연스러운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 중심엔 재미가 빠질 수 없다. 재미를 유치하고 가볍게 치부해선 안 된다. 소비자들과 가장 가까이 공감할 수 있는 무기는 이제 '펀(fun)'이다.

최근 온갖 상을 휩쓰는 디자인 역시 이야기가 담겨 있는 디자인들이다. 램프와 연결된 철판에 전구와 선을 그려놓고 관람자가 지우개로 선을 지우면 전등이 꺼지고, 다시 그려 넣으면 전등이 켜지는 제품을 고안한 폴 콕세지는 세계 디자이너 상을 받은 바 있다. 유럽에서 디자인 아이디어 상을 수상한 김동영의 '2+1'이란 제품 역시 헤드폰을 쓰면 뒤쪽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3D 입체 영상으로 볼 수 있게끔 만들어졌다고 한다. 소비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디자인들이다.

고객에게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회사론 스와로브스키를 손꼽을 수 있다. 이 회사는 최근 AV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고객의 방'(사진)이란 걸 만들었는데, 천정에 비치는 무지개 색깔의 거대한 크리스털 공간으로 환상적인 사이버 공간을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엔 아메리칸 걸스 플레이스라는 인형 회사가 있다. 이 회사에선 새로운 인형을 선보일 때마다 그에 맞는 독특한 스토리를 만들어 어린이들이 이에 맞춰 다양한 옷.침대.친구 등을 계속 구매하게끔 하고 있다. 계속되는 이야기 덕분에 매출도 늘어나는 셈이다.

회사들은 머지않아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와 같은 이야기꾼들을 스카우트할지도 모른다. 앞으론 아파트를 분양할 때도 모델하우스 1타입, 2타입 하는 게 아닌 행복한 이야기를 담아보는 건 어떨까. 네버 엔딩 스토리(Never Ending Story)는 이제 동화책을 떠나 치열한 마케팅 현장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아이에프 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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