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발상의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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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진로상담 중 학생이 생소한 말을 쓴다. “복전이 취업에 도움이 될까요?” 내가 아는 복전(福田)은 불교용어로 ‘복을 거두는 밭’인데 설마 학생이 그런 심오한 뜻을 알고 썼을까? 문맥도 안 맞고. 이럴 때 어울리는 사자성어가 불치하문(不恥下問). 모르는 건 제자에게라도 물어야 한다. 뭐가 부끄러운가. 그런데 막상 해답을 얻고 보니 까닭 모를 허탈감이 밀려온다. 그가 가르쳐 준 ‘복전’은 복수전공의 준말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느냐는 표정이 살짝 얄밉다.

 교수도 인간인지라 복수(이럴 땐 ‘복전을 모른 걸 수습’한다는 뜻)하고 싶다. “너 혹시 발전이 무엇의 준말인지 알아?” 어리둥절해하는 틈을 타서 잽싸게 잽을 날린다. “발상의 전환이야.” 순진하게도 학생은 곧이곧대로 믿으려는 눈치다. 바로잡아 주는 게 선생의 도리다. “진짜 그런 건 아니고 네가 발전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필수라는 취지야.”

 학생은 불안하다. “그냥 이 상태로 졸업을 하면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습니다.”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줄 시간이 왔다. “왜 안 된다고만 생각해? 세상엔 된밥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밥 좋아하는 사람도 많아. 나도 그렇거든. 죽도 밥도 아니라는 게 뒤죽박죽은 아니잖아. 죽의 특성과 밥의 특성을 버무린 제3의 음식을 창조해 낸다면 어떨까? 바나나우유를 봐라. 바나나도 아니고 순수 우유도 아니지만 오히려 더 잘 팔리잖아.”

 시동을 건 김에 긍정의 힘을 일깨워 주는 동화도 구연한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3년 고개’ 이야기다. 발상의 전환은 죽어가던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4단락으로 나눠 본다. (기)그 고개에서 한 번 넘어지면 3년밖에 못 산다. 이른바 저주의 언덕이다. (승)소심한 선비가 그 고개에서 넘어진다. 그는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린다. (전)현인이 나타나 조언한다. 한 번 넘어지면 3년밖에 못 산다니 열 번 넘어지면 30년 살겠네요. (결)선비는 바로 달려가서 떼굴떼굴 수백 번 넘어진다. (뒷말)그가 엄청 오래 산 덕분에 3년 고개는 이름이 장수고개로 바뀌었대나 어쨌대나.

 사례 하나를 덤으로 얹어 준다. “연아, 연재 둘 다 또래 중에서 가장 많이 넘어져 본 친구들이거든. 넘어져서 드러누운 게 아니라 그때마다 씩씩하게 다시 일어났기에 최고가 됐잖아. 너도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마. 고민만 하지 말고 너도 네 마당에서 부지런히 굴러 봐. 그러면 기필코 네 인생도 반전, 아니 복전(복을 거두는 밭)이 될 거야.”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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