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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 칼럼

미국이 보는 '균형자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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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이 '균형자론'을 밝혔다. 미국인은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사적으로 한국은 세계를 상대로 세 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고립.대륙정책.해양전략이다.

수십 년 동안 한국은 해양전략을 추구했다.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사욕이 없는' 미국에 의존해 인접한 호전적 세력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왔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많은 지도층 인사는 이 전략의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렇다면 '균형자론'은 대륙정책으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것인가. 분명히 한국의 현재 정책엔 이에 대한 암시가 있다. 서울이 우선시하는 것은 평양과의 화해다. 이를 위해 정책의 무게를 워싱턴보다는 베이징(北京)에 둔다. 노 대통령은 초(超)태평양 라인보다는 범(汎)아시아 위주로 지역을 재조정해 한국을 동북아의 경제 '허브'로 만든다는 비전을 추구한다. 여기서 미국의 존재는 부각되지 않는다. 서울은 워싱턴과의 방위 사슬이 마찰을 빚고 있는 동안 베이징과는 새로운 군사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한국 국민의 점증하는 적의, 그리고 중국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점증하는 경의는 대륙과 해양 세력에 대한 한국의 태도가 비대칭적일 것임을 시사한다.

한국은 중국에 반대해 균형을 취하기보다는 중국에 편승함으로써 균형을 취한 전례가 있다. 이 때문에 일부 미국인은 노 대통령의 '균형자론'이 생각보다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믿는다. 보통 중간 크기의 세력은 세계적 또는 지역적 세력균형 과정에서 그 조정을 반영하는 잣대가 되곤 한다.

동북아의 균형은 분명히 변하고 있다. 중국은 강대국으로 부상 중이다. 일본은 역외 안보 책임을 떠맡기 위해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북한의 핵활동은 지역 내에 더 광범위한 핵 도미노를 촉발시킬 수 있다. 민족주의는 아시아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됐다. 아시아의 새 지도자들은 국내 지지가 약할 때일수록 민족주의 감정에 몰입한다. 무엇보다 미국의 정책이 테러와 핵 확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급격하게 변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이 새로운 불확실성에 대비해 자신의 위상을 새롭게 조정하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북한과의 화해는 북한의 위협을 제거하고 미국에 대한 한국의 의존도를 낮춰준다. 중국과의 관계 강화는 북한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고 북한에 제재를 가하려는 미국의 압력을 막아준다.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고 또 한반도에 미군을 유지시키는 것은 북한과 중국의 의도에 대한 판단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날 때를 대비한 '위험 방지책'이다.

그러나 양다리 걸치기엔 신중함이 요구된다. 모든 전략을 선택 가능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국가는 거의 없다. 상대도 각기 다른 선택을 갖고 있다. 지배도 선택의 하나다.

나는 미국인으로서 한국의 '균형자론'이 동맹의 미래에 미칠 충격을 걱정한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동맹에 많은 투자를 했다. 또 동맹의 실질 성과를 인정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동맹은 불확실성에 대한 방지책이다.

'균형자론'은 오랫동안 동맹의 기초를 제공해 왔던 안보 이익에 대한 공감대가 점차 부식하는 배경에서 나왔다. 그리고 워싱턴은 이제 전통적인 동맹에 대해 주의를 덜 기울인다. 반면 '연합할 뜻이 있는' 나라에 관심을 보인다.

한국의 외교전술이 대륙정책 전환으로의 결정적 전조가 될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전략적 선택을 극대화하는 계기가 될까. 한.미의 동맹관계에 대한 엄격한 검증은 다음 사항으로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한.미가 공조를 통해 평양에 대한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우리의 동맹은 속 빈 조개껍데기에 불과하다.

마이클 아머코스트 전 브루킹스연구소장
정리=유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