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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계산된 오보(誤讀)와 의도적인 오독(誤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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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많아야 2~3%'란 말이 뜻하는 바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수학적으로는 3% 이하가 되고,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는 오차범위 안에 들어간다. 또 그게 확률을 가늠하는 말이면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 되며, 성분 비율을 나타낸다면 그런 성분은 별로 없다는 뜻으로 보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10만 명 가운데 많아야 2000~3000명'이란 말 또한 같다. 10만 명이 모인 가운데 어떤 성분의 사람이 많아야 2000~3000명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다는 뜻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 바로 '많아야 2~3%'란 말과 같은 뜻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그들 10만 명을 그 한쪽으로만 몰아붙일 수 있는 수량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는 그 수량이 전혀 달리 받아들여지는 수도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어떤 강연에서, 미군 장갑차 사고로 사망한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시위 때 모인 10만 군중의 용공성을 묻는 청중의 질문에 '많아야 2000~3000명'일 것이란 추측으로 답한 연사가 있었다. 그런데 몇몇 신문은 어이없게도 그 연사가 그 촛불시위에 모인 10만 군중을 용공분자로 몰았다는 호들갑스러운 제목을 달았다.

문자로 된 보도자료 없이 강연만을 듣고 취재하다 보면 잘못 듣는 수도 있고, 또 그 때문에 오보(誤報)하게 되는 수도 있다.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은 이번 오보의 경우다. 오보는 선정적인 제목뿐, '10만 명 가운데 많아야 2000~3000명'이란 원래의 발언은 전혀 손상없이 보도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처음 오보를 띄운 기자뿐 아니라, 거기에 근거해 기사를 작성한 다른 신문들도 용공분자를 정의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그 연사의 말까지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선정적인 제목과 배치되는 그 부분의 보도는 아마도 오보로 문제가 될 경우를 대비한 치밀한 포석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오보는 처음부터 알고 하는, 계산된 오보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일부 시민단체의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오독(誤讀)이었다. 제목이 터무니없더라도 기사 내용을 보면 그게 아니란 것을 알 수 있건만, 그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단체는 막무가내로 기사의 제목에만 집착했다. 자기들을 용공분자라고 몰았다고 펄펄 뛰며 고소를 할 것이네,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네, 법석을 떨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계산된 오보와 의도적인 오독이 일어나는 것일까. 따져보면 그같이 괴이쩍은 작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그렇게 나오는 까닭도 그때그때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무엇이든 이미지로만 재단되는 우리 시대의 특징을 악용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냥 실소하며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일부 신문의 그런 계산된 오보는 어김없이 그 연사에게 완고한 반공주의자 또는 구제받을 수 없는 보수 꼴통의 이미지를 덮어씌우게 된다. 제목만 훑고 넘어가는 독자나 제목의 암시성에서 잘 헤어나지 못하는 독자들은 그가 정말로 촛불시위 군중을 모두 용공분자로 몰아붙인 것으로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단체의 의도적인 오독도 마찬가지다. 그 오독을 근거로 매스컴에서 소란을 떨면 발언자의 매카시즘적인 면모를 확대포장할 수 있을뿐더러, 거기에 희생된 자신들의 억울한 처지를 과장해 대중의 동정을 유발할 수 있을 것이다. 또다시 빨갱이로 몰린 순수한 민족주의자들 - 듣기만 해도 이 얼마나 애처로운 사람들인가.

하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고, 지나치면 도리어 해가 된다. 미국발(發) 매카시즘은 1980년대 이후 이 나라에서도 죄악으로 무르익어 땅에 떨어졌다. 오히려 6공화국 20년은 역(逆)매카시즘이 창궐했던 시대였고, 이제는 그 또한 죄악으로 무르익어 땅에 떨어지려 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이념논쟁에 관한 한 이 나라에서는 도둑이 매를 든 지 이미 오래되었다. 돌이켜 보건대 얼마나 많은 자유민주주의의 영웅이 간교하고 파렴치한 역매카시즘에 걸려 바보나 악당으로 사라져야 했던가. 하지만 달은 차면 기울게 마련, 이 땅에서 휘황했던 역매카시즘의 달도 어느새 보름달이 되어 감을 이제는 차츰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문열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