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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부동산 정책 … 서울 상계동 애꿎은 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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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거래가 안 되고 매매.전셋값이 떨어지고 있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 아파트단지 부근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급매물 목록이 많이 나붙어 있다.신인섭 기자

"서민층을 위해 강남권 집값을 잡겠다고요? 결과는 서민이 많이 사는 강북권 집값만 잡은 거 아닙니까." 1일 만난 서울 노원구 상계동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쏟아져 나온 부동산 안정대책이 강남권을 겨냥했다지만 정작 집값이 떨어져 피해를 보는 곳은 강북권이라는 것이다. 서울 강북권의 대표적 아파트 밀집촌인 상계동에선 매매 거래가 끊긴 지 오래다. 전.월세도 제때 빠지지 않아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에 얼굴 붉히는 일이 흔하다. 한때 신혼부부 등이 가장 많이 찾던 이곳은 썰렁한 느낌마저 든다. 1가구 2주택자의 살지 않은 주택에 대해 양도세 중과 등을 뼈대로 한 5.4 대책이 나온 이후 시장은 더 얼어붙었다.

◆ 매매.전셋값 내리막길=상계동 아파트값은 최근 1년반 동안 되레 1000만~2000만원 정도 떨어졌다. 매물은 많은데 매수세가 뒷받침되지 않아서다. 주공 9단지 17평형은 1년반 전 8500만~9000만원에서 지금은 7500만원으로 내렸다. 2200여 가구인 주공 3단지도 평형별로 500만~1000만원 떨어졌고 나온 매물도 전체의 30~40%에 이른다.

하지만 거래는 거의 되지 않는다. 상계동 교승 공인중개사 조윤경 사장은 "집을 내놓겠다는 전화만 걸려올 뿐 사겠다는 문의는 없다"고 말했다. 주공아파트에 산다는 한 주민은 "강남권이 해마다 10% 이상 오른 것과 비교하면 참담한 기분"이라고 전했다.

상계동 아파트 시장에 직격탄을 날린 것은 1가구 3주택자의 양도세 중과 조치와 보유세 강화 등을 담은 2003년 10.29 대책이다. 이곳의 아파트는 10~20평형대가 주류로 강남권에 사는 집부자들이 임대용으로 많이 보유했다. 그런데 이 대책이 나온 후 강남권 등 집값이 오를 곳은 보유를 하고, 안 오를 것 같은 상계동 아파트는 대거 내놓아 매물이 급증했다. 지난달 4일 발표된 부동산대책 이후 사정은 더 심하다. 계절적 비수기 탓도 있지만 내년부터 1가구 2주택자라도 살지 않는 집을 팔 때는 양도세를 실거래가로 과세하기로 한 때문이다. 크로바공인 관계자는 "가뜩이나 매물이 쌓여 있는데 5.4 대책 이후 10평형대를 서너 채씩 보유한 사람들이 더 이상 보유할 매력을 못 느껴 집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중대형 아파트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소형 위주의 상계동을 찾는 사람이 줄고 있는 것도 시장 침체의 또 다른 원인이다.

전.월세 시장도 거의 서지 않는다. 세를 놓아도 찾는 임차인이 없어 역전세난이 심하다. 상계동 주공 6단지 주부 진모(32)씨는 "경기 침체로 이사 수요가 줄어 지난해 가을부터 전셋집을 내놨지만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다. 1년이나 이사를 못 가거나 비어 있는 집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주공 6단지 17평형 월세는 2년 전 보증금 1000만원에 월 50만원이었지만 지금은 35만원으로 내렸다. 전셋값도 2000만~3000만원 떨어져 6단지 23평형은 2년 전 1억1000만원이었지만 지금은 8000만~9000만원에 머물고 있다. 한 중개업소 사장은"이사비까지 대주겠다는 집주인도 적지 않다. 거래가 끊기면서 전세분쟁이 끊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 "대책 세워달라" 볼멘소리=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 정부 주택정책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상계동 주민 최모(54)씨는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칼을 휘둘렀는지는 모르지만 강남 집값을 못 잡고 결국 피해 본 쪽은 서민들이 사는 강북"이라고 말했다. 럭키공인 박하순 사장은 "정부가 집값 안정대책을 발표하면 강남권은 시큰둥하지만 이곳은 싸늘히 가라앉는다. 가끔 이뤄지는 전.월세 거래만으로는 가게 임대료 내기도 벅차 전업을 고려 중인 중개업소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연세대 도시공학과 김갑성 교수는 "정부가 규제 위주의 정책을 편 결과 강남권 아파트 희소가치만 높였다. 수요가 많은 강남권 물량을 늘려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고, 강북의 소형 평형에 대한 세제혜택을 주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고 주문했다.

서미숙 기자 <seomis@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부동산세론 투기 못 막아"
KDI "규제 풀고 공급 늘려야"

부동산 세제 강화와 재건축 통제 등 부동산투기 억제 정책은 장기적으로 투기를 잡을 수 없고,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주택 투기를 막으려면 경쟁원칙에 따라 시장이 움직이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공급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석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일 '한국의 주택 관련 세제의 평가'라는 논문에서 주택가격은 수요는 물론이고 공급에 의해서도 움직이는 만큼 수요 억제만으로 주택가격이 안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양도소득세의 경우 비과세나 감면 등의 혜택이 너무 많아 납세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고 빠져나가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혜택들은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부동산가격 상승과 가격 안정대책'이란 논문에서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투기억제 조치를 강화하는 것보다는 주택공급을 지속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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