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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담도 르포] 주민들 투자액 30억 피해… 허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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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해대교상 경기도 평택시에서 충청남도 당진군으로 넘어가면 행담도가 있다.

▶ 행담도 휴게소

"여기가 그 행담도죠?" 경기 평택시와 충남 당진군을 잇는 서해대교 중간의 행담도 휴게소. 이곳 판매원들은 요즘 손님들의 이런 질문공세에 적잖이 시달린다고 했다. 여느 고속도로 휴게소의 2~3배 규모인 이 곳은 최근 행담도 개발사업과 관련한 의혹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 '대체 어떤 곳이기에' 하는 호기심에 부러 들러본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의혹사건을 계기로 개발사업이 알려지면서 뒤늦게 땅을 보겠다고 오는 이들도 적지않다는 게 이 지역 사람들의 전언이다.

이번주초 이 곳을 찾은 기자도 "여기가 그 행담도냐"고 말머리를 떼었더니 휴게소 식당에서 일하는 박모(27.여)씨는 무안한 듯 미소부터 지었다. "휴게소랑은 상관없어요. 저 뒤에 매립공사하는데가 거기지"라는 답변이다. 박씨가 가리킨 곳에서는 트랙터, 포크레인이 오가며 공사가 한창이었다.

6만평 규모의 행담도를 해양복합레저타운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진 것은 1995년. 지난 2000년 11월 휴게소가 문을 열었을 뿐 나머지 시설은 아직 매립공사 단계다.

휴게소의 한 상점에 붙어있는 빛바랜 조감도의 문구는 수사가 화려했다. "섬과 다리와 바다의 합창교향곡, 자연의 숨결과 인간의 손길이 어우러진 서해대교의 다이아몬드"라고. 조만간 돌고래쇼장, 해양수족관, 골프연습장, 요트장이 건설될 예정이라고 적혀있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그 후에는 분수광장, 실내수영장, 실내눈썰매장, 해수사우나, 나비박물관, 식물원, 파충류관, 조류원, 호텔 등도 만든단다.

이런 장밋빛 청사진과 달리 행담도 안팎에서 만난 인근주민들은 '매립공사로 바지락도 안 잡힌다''개발사업에 투자했다가 손해만 보고 물러났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 행담도 휴게소 진입램프 밑에 위치한 횟집. 지역주민들이 투자해 만든 곳이다.

투자손해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곳은 서해대교에서 휴게소로 빠져나오는 램프밑에 자리한 '행담도 해산물센터'다. 매산리 주민 25명이 서해랜드 주식회사라는 법인을 만들어 공동투자한 이 횟집은 현재 폐업중이다. 서해랜드의 박창호 대표는 "행담도개발㈜가 2000년 11월 관광지 개발사업 설명회를 열어 횟집이나 상가 운영을 권유했다"고 말했다. "횟집, 건어물 가게 등을 포함한 상가를 분양받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이후 2001년 6월 행담도개발㈜의 대주주인 싱가포르 이콘사가 부도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업계획이 변경되고 사업일정이 지연됐다는 것. 투자자들이 재촉해 행담도개발㈜에서 2003년 4월 현재 위치에 횟집을 지어줬으나 주민들은 아홉 달 만에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횟집의 위치는 정확히 말해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교각, 즉 다리밑이고 전망도 바다가 아니라 휴게소 주자창을 바라본다. 언뜻 보기에도 손님이 많이 들지 않았을 법했다. 주민들은 보증금 13억원에 시설비 17억원 등 총 3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농지를 팔거나 어업보상을 받은 돈과 은행대출 등으로 마련한 돈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행담도개발㈜ 관계자는 "서해랜드측에서 해약을 요구해와 임대보증금 13억원을 돌려줄 계획이고 나머지 금액의 보상문제는 검토중이다"라고 밝혔다.

▶ 휴게소 뒤편으로 매립공사가 진행중이다.

이처럼 갯벌매립을 통한 관광지 개발 공사가 지연되면서 주민들은 개발 자체에 회의를 느끼는 듯 했다. 서해랜드의 박 대표는 "진작 터졌어야 할 일"이라면서 "행담도 의혹이 터지면서 그간 철저히 베일에 가려있던 행담도개발㈜에 대해 충분히 조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인근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광호(48)씨는 "서울시는 청계천을 복원하는 마당에 이 갯벌매립한 것들은 나중에 어쩔 셈인가"라고 반문부터 했다. 그는 "바지락만 캐도 하루 5~6만원 벌이는 됐고 갯벌체험 관광객도 있었는데, 매립공사 하면서 바지락도 안 나온다"면서 "개발공사가 지연되면서 개발 이익은 커녕 지역 생태계만 파괴돼 살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개발사업이 시작되기 이전에 행담도에 살던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95년 행담도에서 퇴거한 최희영(75)씨는 "그 때 20세대 가량이 섬에 살고 있었는데, 땅주인은 국유지이거나 외지인 소유라서 철거 및 이사 비용으로 2천~3천만원 가량을 받고 나왔다"고 들려줬다. 현재 매산리에서 농어업에 종사하는 최씨처럼 인근에 살고있는 이도 있지만 멀리 외지로 나가 소식이 끊긴 이웃들도 있다고 한다. 최씨는 "퇴거 당시 휴게소를 개통하면 행담도 출신 주민들이 장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기로 했는데 지지부진하다"며 "그런 약속도 안 지키는 이 개발사업이 청와대까지 개입한 대규모 국책사업이라고 연일 보도되는 것을 보면 어이없다"고 말했다.

▶ 행담도에서 95년 퇴거한 최희영(75)씨.

행담도를 빠져나와 서해대교를 건너면 나오는 매산리 일대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인데도 부동산이 즐비했다. 그 중 한 곳인 S부동산 관계자는 "1년새 이곳 땅값이 50% 올랐다"며 "최근 보도로 '행담도 개발사업'이라는 말이 세간에 오르내리자 새삼스럽게 땅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행담도 휴게소에서 만난 40대 중반의 주부는 "경기도 일산에 사는데, 서해안 드라이브 삼아 지나는 길에 요즘 세간에 오르내리는 곳이라 들렀다"며 "와보니 별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들 로비를 했나 싶다"고 말했다. 50대 남성 세 사람은 "여기가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행담도야"라며 두런거리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이야 뭐 그리 부자됐겠어. 자기들끼리 벌이는 사업이고 매립지인데"라는 얘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휴게소 부근에서 자영업을 하는 한 주민의 말이 신랄했다. "거지도 아니고 다리밑에 뭘 개발하냐"는 냉소였다.

◆행담도 개발사업= 서해대교 아래 있는 6만여평 규모의 섬 행담도에 해양복합레저타운(오션파크리조트)을 조성하는 사업. 서해안고속도로 건설(1990년 12월~2001년 12월)이 한창이던 95년 한국도로공사가 건설교통부로부터 승인받았다. 도공 등은 이 사업을 위해 99년 행담도개발㈜를 설립했다. 1단계 사업인 휴게소 건설은 마무리돼 현재 제주랜드㈜가 임대해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섬 주위 7만4200평을 매립해 2단계 사업인 호텔, 테마공원, 해양수족관, 오션돔 등을 만들 예정.

사업설명서를 작성할 당시인 99년에는 외환위기의 여진이 있던 때여서 외자를 유치해 사업을 진행키로 했다. 이에 싱가포르 EKON(2002년 부도나면서 자회사인 EKI가 사업 추진)이 투자키로 했다. 환경문제 등의 반대로 매립 규모를 축소하면서 사업내용도 변경됐다.

행담도=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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