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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그루지야서 완전 철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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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그루지야에 주둔 중인 러시아군이 2008년까지 완전 철수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살로메 주라비시빌리 그루지야 외무장관은 지난달 30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철군 협상에서 이같이 합의했다.

이번 합의로 2003년 시민혁명 이후 나타난 그루지야의 '탈(脫)러시아 친(親)서방' 움직임은 한층 가속화할 전망이다.

◆ 극적인 철군 합의=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내년부터 철군을 해 2008년까지 완료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할칼라키 군기지와 바투미 군기지 순으로 철군이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라비시빌리 장관은 "그루지야는 자국 영토에 다른 나라의 군사기지 주둔을 더 이상 허용치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군이 철수한 뒤 그 공백을 미군이나 나토군이 메우는 것을 우려해온 러시아를 안심시키려는 말이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그루지야에 계속 남아 있던 네 곳의 군사기지 중 두 곳을 이미 90년대 말 폐쇄했다. 그러나 그루지야 남부 아할칼라키와 흑해 연안의 바투미 군사기지 두 곳의 철수는 미뤄왔다.

카프카스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완전 독립을 희망해온 그루지야는 러시아군 철수를 줄곧 요구해 왔다. 특히 2003년 말 '장미 혁명'으로 집권한 친서방 성향의 미하일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러시아군 철수에 강경한 태도를 취해 왔다. 옛 소련권으로의 영향력 확대를 꾀해온 미국도 "필요하다면 철군 비용을 부담하겠다"며 모스크바를 압박했다.

◆ 갈등의 불씨는 여전=러시아와 그루지야 양국은 99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군의 철수에 원칙적인 합의를 했었다. 그러나 이후 구체적 철군 시기를 둘러싸고 양국의 입장이 대립해 왔다. 양국은 지난달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 행사를 앞두고 철군 협상을 마무리짓는다는 계획이었으나 실패했다. 사카슈빌리 대통령은 불만의 표시로 승전 행사에 불참했다. 이후 양국 의회까지 가세한 갈등으로 치닫던 철군 협상은 이날 외무장관 간 담판으로 일단 타결됐다.

그러나 러시아가 그루지야에서 철수하는 군대를 이웃 아르메니아의 자국군 기지로 이동 재배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불씨는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미국도 최근 개통된 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터키 경유 송유관 보호를 명목으로 이 지역에 군사력 파견을 검토하고 있어 미.러 간 군사 대립이 격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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