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aturday] 아시안게임 금 66명 병역 혜택 … 형평성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야구 대표팀 나지완(KIA·왼쪽)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병역 혜택을 받지 않았다면 올해 군 입대를 해야 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승리가 확정된 뒤 동료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하는 나지완. [중앙포토]

20대 대한민국 남자들에겐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바로 병역이다.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다. 병역을 회피할 수 없다. 길게는 2년 넘는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한다.

 지난 4일 막을 내린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딴 66명(대한체육회 추산)의 선수가 병역의 부담에서 벗어났다. 4주간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체육 요원으로 해당 분야에서 일정 기간 복무해야 하지만 군 입대에 비하면 큰 혜택이다.

 배드민턴 손완호(26·김천시청)와 유연성(28·수원시청)은 상무에서 전역하는 날 금메달을 목에 걸어 화제가 됐다. 이란을 꺾고 금메달을 딴 남자 농구에서도 4명의 선수가 병역 혜택을 받았다. 특히 입대 6개월이 된 ‘육군 일병’ 오세근(27·인삼공사)은 ‘꿈에서나 가능한’ 조기 전역의 혜택을 받았다. 남자 축구는 김신욱(26·울산), 임창우(22·대전) 등 엔트리에 오른 20명 전원이 수혜자다. 야구에서도 황재균(27·롯데), 나성범(25·NC) 등 13명이 포함됐다. 미필자들의 환호는 컸다. 신성한 의무를 받아들이는 마음과는 별개로 군 복무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혜택은 말 그대로 남들과 다른 대우다. 그에 상응하는 또 다른 부담이 따른다. 바로 주변의 시선이다. 의무가 제대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공평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우승한 야구 대표팀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선수 선발 과정에서 미필자가 대거 포함되면서 비판을 받았다. 입대 영장을 받고 더 이상 연기가 불가능했던 나지완(29·KIA)은 “팔꿈치 통증이 있었지만 참고 뛰었다”고 말해 팬들의 집중 포화를 받기도 했다. 병역 혜택을 받기 위해 부상을 참았다는 의혹이 있었다. 국방의 의무가 단지 ‘포상’의 도구로 사용됐다는 점에 사람들은 분노를 쏟아냈다.

 그래서 아예 병역 혜택을 주지 말자는 주장과 함께 종목별 형평성을 고려한 기준을 제대로 만들자는 말이 나왔다. 아시안게임에는 야구처럼 금메달 가능성이 큰 종목이 있는 반면 은·동메달도 값진 경우도 많다.

왼쪽부터 전역 날 금메달을 딴 배드민턴의 손완호와 유연성, 축구 금메달 주역 임창우와 부상 투혼을 발휘한 김신욱, 입대 6개월 만에 조기 전역의 혜택을 받은 농구 오세근, 야구 결승에서 쐐기 타점을 올리며 영웅이 된 황재균. [중앙포토]

 해군참모총장 출신인 김성찬(60·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7일 기준을 강화해 혜택을 축소하는 병역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대회 하나 나가서 메달을 땄다고 면제되는 게 아니고, 여러 차례의 대회 성적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법안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생소한 주장은 아니다. 지난해 7월 이미 병역 포인트 제도에 대한 관련 기관의 논의가 있었다. 국제대회의 규모와 중요성에 따라 포인트를 차등 부여해 이를 합산한 결과로 병역 혜택을 주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기준이 강화되면 혜택의 범위가 축소될 수밖에 없어 현행 제도를 유지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사실 1973년 관련 법률이 만들어지면서부터 축소와 확대의 줄다리기는 끊이지 않았다. 부담의 수준을 넘어서 병역의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전성기 때 2년의 공백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병역의 기회비용을 돈으로 환산할 경우 수십억에서 수백억원까지 나온다. 메이저리거 박찬호(41)와 추신수(32·텍사스)는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혜택을 받고 대규모 계약에 성공했다. 이들이 선수 생활 도중 군 입대를 해야 했다면 큰 손해를 봤을 것이다.

 박지성(33)과 류현진(27·LA 다저스) 같은 선수들이 해외 무대에서 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도 병역 혜택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은 병역 혜택을 통해 부를 쌓았고 국위선양도 했다. 병역 혜택의 대표적인 순기능이라 볼 수 있다.

 군 입대가 선수들에게 반드시 피해가야 할 난관만은 아니다. 이번 아시안게임 사이클 스프린트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임채빈(23)은 상무 전역을 16일 남겨 화제가 됐다. 그는 “입대 뒤 정신적으로 성장했다. 처음으로 대표도 됐다. 다 군대 덕이다”라고 말했다.

 이동국(35·전북)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이란에 져 병역 혜택을 받지 못했다. 마지막 키커였던 이영표의 일명 ‘군대 가라 슛’이 골대를 맞으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이동국은 “전역 후 신체와 정신이 모두 튼튼해졌다”고 밝혔다. 지난달 16일 전역한 이근호(29·알자이시)는 상무 축구팀 연고지인 경북 상주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브라질 월드컵 러시아전에서 골을 넣었던 이근호는 “상주 상무는 내 커리어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올 시즌 프로야구 타격왕 경쟁을 벌이고 있는 최형우(31·삼성)와 서건창(25·넥센)도 군 입대 전 방출의 설움을 맛봤지만, 제대 이후 기량이 만개해 신인왕에 오른 공통점이 있다. 홈런왕 박병호(28·넥센)도 상무 입대가 자신의 야구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고 말한다.

김원 기자 raspos@joongang.co.kr

[S BOX] 1970년대엔 한체대 졸업성적 10% 이내도 특례

스포츠 선수들이 올림픽·아시안게임 입상을 통해 받는 병역 혜택은 1973년 3월 만들어진 ‘병역의무특례 규제에 관한 법률’이 시초다. 그해 2월 23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비상국무회의에서 국위선양에 기여한 선수들에게 혜택을 주자는 내용을 제안했고 3월 3일 곧바로 시행됐다. 당시에는 올림픽·세계선수권·유니버시아드·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대회 3위 이상 입상자에게 혜택을 줬다. 국립 한국체육대학교 졸업성적이 상위 10% 이내인 선수도 대상자에 포함됐다.

 89년에는 법률 폐지가 논의됐다. 국제대회 경쟁력이 생기면서 수혜자가 많아졌고 일반 국민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체육계의 반발로 폐지하는 대신 수혜 범위를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안게임 1위로 조정하는 선에서 유지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여론의 지지에 힘입어 월드컵 16강 이상 입상자가 추가됐으며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을 계기로 WBC 4위 이상의 성적을 거둔 경우에도 혜택을 받았다. 그러다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09년 WBC 때는 다시 제외됐다.

 예술 대회 입상자들 역시 병역 혜택을 받지만 최근 들어 축소되는 분위기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국제대회가 법률이 제정될 당시에는 제한이 없었다. 하지만 2008년 123개로 확정됐고 2011년 30개, 2012년에는 27개로 줄어들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