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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발전 외면하면 호남 민심 못얻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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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나라당이 '서쪽'으로 다가서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서쪽은 호남이다. 당내 의원 모임인 '국민생각'이 5.18묘지를 참배했다. '푸른정책모임'은 목포에 가고 '새 정치 수요모임'이 전북을 찾는다. '지역화합발전특별위원회'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했다.

'서진 정책' 혹은 '호남 끌어안기'로 이름 붙여진 한나라당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해 6월부터 본격화했다. 호남 민심을 얻지 못하고서는 집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한다. 잘 봤다. 당의 미래로 보나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응한다는 측면에서나 바람직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방향을 보았으되 길은 잘못 들어선 것 같다. 5.18묘역에서 고개 숙이고 DJ 생가를 어루만지면 호남 민심이 한나라당 지지로 돌아설까. 지역 발전을 약속만 하면 한 자릿수 득표율이 두 자릿수로 바뀔까. 아니다. 매번 되풀이하였듯이 그런 정치적 제스처만으로는 호남 민심을 얻지 못한다. 한 당직자의 말처럼 호남인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진정성을 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는 폭력에서 비롯한다. 호남인들에게 5.18은 명백한 국가 폭력이었다. 그런 국가 폭력을 자행한 집단이 민주정의당이라는 옷을 입고 1980년대 내내 호남을 억압했다. 정치적 억압은 호남지역의 낙후와 소외로 이어졌고 이것이 호남인들에게 깊은 상처로 자리했다.

신한국당이나 한나라당으로 문패는 바꾸었으되 그들의 집권기에 남긴 상흔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다. 선거 때마다 호남에서 나타나는 한나라당의 한 자릿수 득표율은 그 같은 현실의 정치적 표현인 것이다. 호남인들의 인색하기 짝이 없는 지지율이 대통령의 출신 지역을 따지는 따위의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는 것은 2002년 12월 노무현 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에서 이미 확인됐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한나라당의 '서쪽 다가서기'가 진정성을 담보하려면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정책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상징적 정치행위를 뒷받침하는 실천적 정책이 나와야 한다. 그 정책의 핵심 주제는 국가 균형발전이다. 호남을 특별 대우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지역과 지역 사이, 수도권과 다른 지역 사이에 고착화한 불균형 성장의 그늘을 걷어내는 정책을 입안하고 적극 실천하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우선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을 중단시켜야 한다. 균형발전의 발화점은 분산이며 수도권 집중 해소를 위한 규제완화의 저지는 분산의 토대를 가다듬는 일이다.

이런 토대 위에 주요 공공기관의 낙후지역 이전, 행정복합도시 건설, 행정계층구조의 축소와 행정구역 재편, 선택과 집중 원리에 따른 지역혁신 역량의 강화 정책 등이 어우러질 때 지역 간 균형발전은 기대할 수 있다. 표면적인 호남 감싸안기가 아니라 지역 간 균형발전을 견인하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할 때 비로소 한나라당의 서진 정책은 실효를 기대할 수 있다. 균형발전에 대한 철학의 빈곤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서진정책의 선결 요건이다.

민형배 참여자치21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