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권을 보는 눈이 너무 단순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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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공산권 및 공산주의에 대한 연구와 교육정책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면서 이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해방이후 30여년간의 공산권 연구현황을 점검하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공산권연구협의회 (회장 김준엽)는 연구논총1집으로 한국에서의 공산권연구현황을 종합분석한『공산권연구현황』을 마련했다. 여기에는 한국에서의 공산권연구의 문제점과 개관, 그리고 북한·중공·소련·동구연구의 현황 외에 미국·일본·서독에서의 공산권연구현황이 소개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 이홍구교수(서울대)의 『공산권연구의 시각과 문제점』, 이상우교수(서강대)의 『북한연구현황』의 내용을 살펴본다.

<공산권 연구 시각과 문제점>
이홍구교수는 공산권연구에 대한 한국적 취약점이 있다면 그것은 대상을 보는「시각」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교수는 한국에서의 공산권연구는 이론의 다양함보다도 편견으로 인한 분열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독립운동과 좌우대결 속에서 굳어진 자신의 특정한 경험을 토대로 공산권의 성격을 주관적으로 단정하려는 제1세대△국제화·과학화한 외국이론을 흡수하여 공산권에 대한 「객관적」이해를 시도하려는 제2세대, 그리고△한국적 상황과 무관하다고 생각되는 일반화된 이론을 탈피하여 상황의 논리에 직결되는 새로운 입장을 개발하겠다는 제3세대의 생각이 분열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공산권연구에 적절한 한국적 시각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지난날의 사적경험을 내세운다든가 외국의 학문적 권위를 원용한다든가 어떤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한사코 고집하는 폐습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이교수는 주장한다.
그는 우리가 지닌 공산권연구의 시각에서 뚜렷한 취약점의 하나는 공산권을 과도하게 단순화하는데 있다고 지적한다.
공간적 차원에서 극도로 제약된 우리의 공산권에 대한 시각은 소련·중공·북한을 공산주의의 보는 것으로 간주하는 습성을 길러냄으로써, 이를테면 유러커뮤니즘이나 폴란드사태에 대해서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지적자세가 불편한 풍토를 자아냈다.
한편 북한에 대한 인상이나 감정을 통하여 공산권의 여타국가를 보는 것은 공산권에 대한 균형된 이해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이교수는 주장한다.
광범위하고 복잡한 공산권전반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북한체제나 사회의 성격을 정리하는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만 북한과 공산권에 대한 균형된 시각을 갖게되는 것이다.
이교수는 끝으로 이제 한국에서의 공산권연구도 그동안의 고난을 딛고 본격적 연구가 막 시각되려는 도약의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하고 새로운 도약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연구시각을 확립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연구 현황>
한국에서의「북한연구」현황은 어떤가.
이상우교수는『이제 막 시작된 단계』라고 설명한다.
그간의 저조했던 주된 원인으로는 자료와 연구인원의 부족.
이러한 여건은 70년대에 들어서 72년의「7·4공동성명」, 73년의 「6·23선언」등을 계기로 약간 호전되기 시작했다. 정부독점자료의 부분적인 공급과 연구비 지원등으로 북한연구는 약간 활기를 띠게 되었으며 연구인원 부족도 외국에서 훈련받은 학자들의 귀국으로 부분적으로 메워지게 되었다. 특히 이들의 이론들과 연구방법은 북한연구를 체계화·이론화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57년 창설)와 극동문제연구소(현재 북한문제연구소로 부분 흡수되고 나머지는 국제문제조사연구소로 개편), 그리고 평화통일연구소(국토통일원후원, 81년1월 해체) 등은 60∼70년대 북한연구를 주도해온 연구소들이다.
한편 해방이후 80년6월까지 35년간 국내에서 발행된 북한관계자료는 단행본·논문·자료집을 총망라하여 5천7백22건. 그중 단행본 7백20건, 자료집이 1백49건이다. 분야별로 보면 「정치외교」가 1천2백72건으로 수위.「통일관계」l천1백16건, 「군사」가 9백97건인데 비해「경제·과학」은 2백69건에 불과하다.
현재 1년에 약50편의 분석적 연구논문과 50편 정도의 북한행위 기록논문을 「북한연구」 의 업적으로 추려낼 수 있다.
이교수는 한국에서의 북한연구의 우대지주인 정부기관과 학계는 80년을 고비로 관학협조체제가 쇠퇴하기 시작하여 80년 현재 북한연구는 일단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러한 외형상의 소강상태가 어떤 뜻에서는 한국에서의 북한연구가 자리 잡혀가는 전이기의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즉 70년대는 북한연구가「남북회담」이라는 자극적 상황에 영향받아 열도를 높였던 시대이기도 하지만 많은 유학생들의 귀국과 자리잡혀가는 국내대학에서의 고급인력배출로 수준높은 연구자들이 많아져, 북한연구의 체계화가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로써 정부기관은 자체연구인원을 확보하여 학계의 동원필요를 덜 느끼게 되고, 반대로 학계는 다급한 정책과제연구라는 일시적 연구에의 참여보다 깊이 있고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연구참여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소수가 북한문제 전반을 영역구분없이 다루던 시대를 벗어나 각각 특정분야의 전문연구로 분화되어가기 시각한 것.
이교수는 80년대는 지금까지 이룩한 양적·질적 수준을 기초로 북한을 분야별로 체계화시키고 북한사회의 특성을 보편적인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새 작업을 펴나가기 시작했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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