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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잤는데도 잠이 쏟아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기업 영업과장인 P씨(38)는 최근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운전 도중 건널목에서 잠깐 멈춰 있는 사이에 잠이 든 것이다. 그는 뒤차가 경적을 울리고 경찰관이 차문을 두드린 뒤에야 잠을 깼다.

잠을 충분히 잤는데도 낮에 피곤해 하는 사람이 많다. 몰려오는 잠 때문에 업무 능률이 오르지 않고, 졸음운전으로 곧잘 추돌 사고를 일으킨다. 아침에 눈을 떠도 상쾌하지 않고, 종일 몸이 무거워 삶의 의욕을 잃어 버린다. 이른바 ‘주간 졸림증’이다. 이런 사람들은 수면의 질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주간 졸림증의 가장 흔한 원인은 수면 호흡장애다. 잠을 자면서 한동안 숨을 쉬지 않는 증상을 말한다. 수면 호흡장애는 크게 무호흡증과 저호흡증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숨이 완전히 멈추는 시간이 10초 이상 되는 증상이며, 후자는 호흡량이 정상의 70% 이하로 줄어드는 것을 말한다.

수면 중에 호흡장애가 발생하면 혈액 안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주 잠을 깨거나 깊은 수면인 서파 수면 비율이 거의 없어져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잠을 오래 자도 개운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한 사람은 이런 무호흡 증상이 하룻밤에 800번 이상 나타나기도 한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는 병원에서 수면 다원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 결과에 따라 특수하게 고안된 마스크를 쓰고 자는 상기도 양압술(잠을 잘 때 산소 공급장치를 착용해 기도를 통해 연속적으로 공기를 밀어넣는 방법)을 쓰거나, 이비인후과에서 코골이 치료를 받아야 한다.

다음으로 의심해 볼 수 있는 질환이 주기성 사지 운동증이다. 자는 도중 다리를 움찔거리거나 차는 행동을 말한다. 증상이 심할 때는 하룻밤에 수백 회 사지 운동증이 발생해 수면의 연속성과 질을 떨어뜨린다. 주기성 사지 운동증은 중년 이후에 흔히 나타난다. 역시 진단을 위해서는 수면 다원검사가 필요하다. 증상의 경중과 동반 질환에 따라 다양한 약물을 이용해 치료할 수 있다.

드물긴 하지만 기면병이라는 특이한 질환도 있다. 과도한 주간 졸림증, 감정 변화에 따른 탈력 발작(흥분 상태에서 갑자기 몸의 기운이 빠져 넘어지는 것), 수면 마비 등의 증상이 동반되는 것으로 중·고등학교 무렵 발생한다. 기면병은 업무 능률 저하는 물론 대인관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조기에 진단·치료하는 것이 좋다. 약물 치료를 하면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할 수 있다.

불안을 동반한 우울증도 주간 졸림증의 원인이 된다. 우울증 중에는 과다 수면을 동반하는 유형이 있다. 우울감으로 정서가 가라앉아 있고, 잠에 빠짐으로써 현실을 도피한다.

이 밖에 교대 근무자, 수면지연 증후군도 생각할 수 있다. 해외 장거리 여행 후 나타나는 시차 부적응과 같은 현상이다. 생체 리듬을 주관하는 뇌 속의 시계가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교대근무자의 경우에도 규칙적인 시간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시간의 기준은 기상 때다. 늦게 자더라도 일어나는 시간을 지켜주면 혼란된 시간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때론 파킨슨병과 치매 등 노인들에게 흔한 질환에서도 주간 졸림증이 나타난다. 따라서 4주 이상 지속되는 주간 졸림증이 있을 때는 병원을 찾아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요즘엔 대학병원이나 개원의에서 수면 클리닉을 운영하는 곳이 많아져 가까운 곳을 이용하기 쉬워졌다.

도움말: 을지병원 신경정신과 신홍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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