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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서 배워야 할 울포위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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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폴 울포위츠가 다음달 1일 세계은행 총재에 취임한다. 이제 그는 각국의 빈곤 퇴치를 위한 세계은행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상반되는 두 가지 접근 방법을 보게 될 것이다.

첫째는 직접적인 해결법이다. 깨끗한 물을 공급하거나 아이들에게 식량을 주면서 질병 치료에 필요한 약을 제공하는 일이다. 가난한 여성들을 교육하고 공식 원조를 두 배로 늘리는 일도 포함된다. 이런 일들은 간단하고 직접적이며 선의(善意)만 있으면 되는 데다 정치적인 후원도 비교적 얻기가 쉽다.

둘째는 빈곤 해결을 위해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경제환경을 우선 개선하는 일이다. 즉 국내 투자를 증진시키고,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끌어들이며, 무역정책을 자유화하고,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법이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 두는 '워싱턴 합의'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발전을 촉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는 반부패 정책, 투명사회 협약, 규제 개혁, 경쟁정책 등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은행은 첫째 방식에만 치중해 왔다. 울포위츠는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제는 둘째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우선 최소한의 빈곤에서만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 성장을 여러 방면에서 촉진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인도는 평균 5%, 베트남은 6%, 중국은 9%가량 성장했다. 같은 기간 이들 나라는 매년 6~8%씩 빈곤층을 줄여왔다. 원조로 빈곤층을 줄여나가는 것은 지속적인 성장 동력이 되지 않는다. 지난 20년간 한국 제조업이 만들어 낸 고부가가치의 성장은 같은 기간 세계 어떤 곳에 제공된 원조를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더 컸다.

만약 아프리카가 앞으로 10년간 4~5%의 성장을 유지한다면 더 많은 아이가 생존할 수 있고, 더 많은 가정이 식량을 제공받게 될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이뤄진 세계적 차원의 그 어떤 원조보다 2배 이상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한국은 현재 아프리카와 남미가 걸려 있는 '수출가공지역(EPZ)'이란 덫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처럼 전국적인 무역과 투자 자유화가 이뤄지면서 국내 기업들이 저비용으로 외국 기업과 대등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글로벌 기업과 거래하는 회사 수가 늘어나면서 국내 수출기업의 위상도 올라가게 될 것이다.

이는 근로자와 투자자 모두를 위한 것이다. 한국 근로자의 생산성은 지난 25년 동안 700% 증가했다. 같은 기간 근로자 수도 100만 명에서 700만 명으로 늘었다. 경제 요동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근로자의 실질소득도 연평균 8% 이상 성장했다.

한국은 세계은행이 강조하고 있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에도 앞장서고 있다. 남미.중동.러시아 등은 이제 주요 기업과 금융회사마다 사외이사를 의무적으로 두고 있는 한국의 사례를 따라 배워야 할 것이다.

발전 전략이 있는 성장은 가난한 '고국'을 떠나 해외로 빠져나갔던 경영자와 기술자들을 고국으로 불러들이는 데도 한몫한다. 한국의 수준 높은 전자산업은 1983년 삼성이 재미동포 과학자들을 영입한 데서 출발한다. 그들은 당시 IBM.하니웰.인텔 등에서 일하다 삼성으로 옮겨와 64KD램을 개발하는 데 참여해 크게 기여했다.

울포위츠 총재는 다음달 1일부터 세계은행 직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세계은행이 빈곤 퇴치에 더 큰 공헌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팀을 꾸려야 한다. 그 팀은 아시아의 교훈을 바탕으로 세계의 빈국들이 국내 경제를 진작시켜 빈곤을 뿌리뽑을 수 있도록 구성돼야 함은 물론이다.

정리=강승민 기자
테오도르 H 모란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