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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넘은 혐한·반한 보도로 신뢰 잃은 산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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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 지국장 기소를 톱기사로 다룬 산케이신문 10월 9일자 1면

검찰이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8) 산케이(産經)신문 전 서울지국장을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것은 대통령의 인격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산케이가 도를 넘은 혐한(嫌韓)·반한(反韓) 보도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검찰의 기소가 언론 자유 침해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토 전 지국장을 기소한 배경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9일 “독신 여성 대통령이 유부남과 남녀 관계가 있는 것처럼 허위 보도한 것은 악의적 비방”이라며 “공익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케이 측에서 “공인인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의혹을 보도한 것은 공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한 데 대한 반박이다. 한 수사팀 관계자는 “세월호 참사 당일 국민적 비극이 벌어진 상황에서 독신인 여성 대통령이 유부남과 밀회를 즐겼다는 식의 허위 보도를 하면서 비방 목적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검찰은 가토 전 지국장이 “소문을 사실로 믿고 기사를 썼다”고 진술했으며 당사자나 정부 관계자에게 어떤 확인 취재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점도 기소의 근거로 제시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위치를 모른다”고 한 7월 7일 국회 운영위 발언만 인용하면서 같은 달 10일 국정조사특위(‘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있었다’), 21일 예결위(‘경내에 머무르며 서면 및 유·무선 보고를 받았다’) 답변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故) 최태민 목사와 박 대통령 비선라인인 ‘만만회’ 멤버 정윤회씨 의혹과 관련한 이전의 명예훼손 사건에서 법원이 여러 차례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이며, 대통령의 인격과 사생활도 보호돼야 한다”며 유죄를 선고한 점도 참조했다.

 검찰은 산케이와 가토 전 지국장이 한국과 관련해 논란이 되는 기사를 여러 번 쓴 배경에도 주목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일본 월간지 ‘월간정론’ 9월호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국은 성착취 대국”이라고 기고한 바 있다. 또 종전 50년이자 한·일 수교 30주년이던 1995년 3월 13일 자 사설을 통해 “일본의 한반도 통치는 당시 국제사회가 승인한 일·한 합방조약(1910년)에 의거한 것으로 불법 점거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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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에는 박 대통령의 외교를 ‘고자질 외교’로 폄하하며 ‘한국의 고자질 외교는 민족적 습성 탓?’이란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지난 6월에는 서울에서 열린 위안부 관련 ‘수요집회’에서 같은 달 숨을 거둔 배춘희 할머니의 영정에 묵념한 것을 두고 ‘위안부는 죽어서도 여전히 대일 역사전의 전사로 떠받들어져 반일(反日)의 도구로…’라고 큼직한 제목을 달았다.

 산케이의 ‘반한 화살’은 스포츠·경제 뉴스에서도 일관된다. 지난 6월 월드컵 때는 인터넷 톱기사로 한국과 알제리의 시합 도중 한국 팬들이 알제리 선수 얼굴에 레이저 포인터를 비춘 것처럼 보도했다. 산케이가 발행하는 석간 타블로이드는 한국 정부는 물론 진로 등 일본 내에서 익숙한 한국 기업을 의도적으로 매도하는 게 ‘세일즈 포인트’다. 산케이의 이런 행보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산케이는 ‘한국·중국 때리기’로 먹고사는 신문”(일본 신문사 간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무리한 보도를 이어 가다 보니 오보도 적잖이 나왔다. 대표적 대형 오보는 3년 전 2011년 7월 8일자에 “장쩌민(江澤民) 중국 전 국가주석이 6일 저녁 베이징 시내의 병원에서 숨졌다”는 기사다. 산케이는 오보를 인정하지 않다 장 전 주석이 공식석상에 나타난 3개월 후에야 사과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언론 자유 침해라는 우려도 나온다. 숙명여대 강형철(미디어학부) 교수는 “산케이가 정통 언론이라면 지양해야 할 선정적인 보도를 했지만 이를 윤리적으로 비판할 수는 있어도 법적으로 대응한 건 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부산대 임영호(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유감 성명을 내는 정도에서 그쳤어야 할 사안에 법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격”이라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양성희·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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