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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회사 '주먹들과 동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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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자신들에게 비협조적인 재건축조합장 교체를 위해 폭력배까지 동원한 건설회사, 조합원들의 건축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알면서도 돈을 받고 설계변경안을 통과시켜준 조합장, 뇌물로 아파트 분양권을 받은 구청 공무원.

대형 건설업체 D사가 공사를 맡았던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재건축 사업 추진 과정에서 있었던 추악한 이야기들이다.

경찰에 따르면 1999년 5월 공사를 맡은 이 회사는 폭력배 20여 명을 고용해 철거 대상인 연립주택 입주자들을 찾아다니며 "빨리 집을 비우지 않으면 아이들이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라"며 이주를 종용했다. 당시 총 600여 가구 가운데 300여 가구가 제때 집을 비워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폭력배들은 또 그해 11월 당시 조합장이 회사 측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자 승용차에 40여분간 감금한 채 협박, 조합금고 열쇠를 빼앗고 조합총회를 거쳐 조합장직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폭력배들은 당시 조합 대의원총회에서 조합장 교체에 반대하는 일부 조합원을 폭행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총회 결과 당초 지하 3층까지 파내려 가려던 계획은 지하 2층까지만 파는 것으로 됐고, 20평형 아파트도 줄고 40평형 아파트가 늘어나 가구수는 911가구에서 798가구로 줄었다. 그러나 D사는 지하 한 층을 덜 파게 됨에 따라 줄어든 공사비 130억원을 총 사업비에서 빼지 않고 오히려 대형 평형 위주의 공사를 핑계로 총 공사비를 750억원에서 910억원으로 부풀렸다. 이 때문에 조합원 등은 한 가구당 평균 1000만원을 추가로 부담하게 됐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또 통상 재건축 공사를 맡은 건설사는 총 공사비의 15%를 이익으로 남기는 데 비해 D사는 총 공사비의 30%인 300억원을 남겼다고 밝혔다.

이 회사 현장소장 등은 하도급비를 부풀려 비자금 6억원을 마련한 뒤 이를 폭력배와 조합 관계자, 구청 공무원 등에 건넸다. 폭력배 두목 남모(42)씨는 46평형 아파트 2채를 특혜 분양받았고 설계변경에 편의를 봐 준 후임 조합장 정모(63)씨는 3000만원과 46평형 분양권을, 부조합장은 1억4000만원을 회사 측으로부터 받았다. 또 당시 모 구청 재건축담당 조모(58) 국장과 주임도 46평형 분양권을 받았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1일 당시 현장소장이던 이 회사 상무보 김모(50)씨와 부장 이모(46)씨, 조합장 정씨 등 조합원 2명, 구청 국장 조씨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경찰은 달아난 폭력배 남씨 등 2명과 구청 담당 주임을 쫓고 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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