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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진 소식에 주민들 "반갑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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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앙일보.경기도가 글로벌케어.경기도 의사회와 함께 구성한 '이라크 긴급의료봉사단'은 지난 21일 출국해 22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 도착했다.

의사.간호사.자원봉사자로 이뤄진 의료봉사단 1진 20여명은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나흘 동안 머물며 이라크 내 의료 수요와 치안문제 등 현지 사정을 파악한 끝에 바그다드시 인근 사담시티를 의료봉사 지역으로 결정했다.

이들은 26일 차량편으로 13시간 걸려 사담시티에 도착해 모래 폭풍 속에서 사랑의 병원을 열었다. 봉사단은 다음달 14일까지 진료활동을 계속하게 되며, 경기도는 의료지원단 1백명을 세 차례로 나눠 보낼 예정이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포연이 멈춘 열사의 땅 이라크에서 종전은 기근, 절망, 콜레라와의 또 다른 전쟁을 의미할 뿐이었다.

폐허 속 무더위와 갈증, 검게 그을린 건물 뒤편으로 울려퍼지는 산발적 총성. 또다시 찾아드는 칠흑같은 어둠. 전염병과 비극적 사연들….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는 깊었다. 후세인 정권의 무능과 실정(失政)도 종전을 계기로 드러나고 있었다.

"앗살람 알라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27일 오후 바그다드 북쪽 위성도시인 사담시티 알하비비 지역.

10평 남짓한 나시르(38.운전기사) 집 안마당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환자들이 수백명 몰려들었다. 한국에서 의료진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환자와 가족들은 봉사단을 보고 눈물을 글썽였다.

11세 소녀 하비바는 18개월된 여동생을 힘겹게 안고 있었다. 가쁜 숨을 내쉬는 동생을 의료진에게 내보이며 "살려달라"는 말만 거듭할 뿐이었다. 하비바의 크고 맑은 눈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30대 어머니는 하반신이 마비된 두살배기 아들 무하마드 아심을 안고 꿇어앉아 기도에 열중했다. 어머니는 "1991년 걸프전 당시 화학무기에 노출됐는데 그 뒤 기형아를 낳았다"고 말했다.

무릎 관절염이 심한 이삼 다우야 마흐디(53.여)는 "10여년 동안 관절염으로 고생했지만 진료는 한번도 받지 못했다"며 "후세인이 몰락하니 치료를 받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담시티는 종전 후 도시 이름이 사디르시티로 바뀌었다. 주민들이 사담 후세인의 이름을 딴 도시 이름을 순교한 시아파 성자인 알사드르로 바꿔 버렸다.

주민 대부분이 시아파 교도여서 후세인 정권 25년 동안 냉대를 받았다. 따라서 미군의 집중포격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에 전상자 수는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인구 2백만명인 지역에 종합병원이 두 곳에 불과한 데다 의사도 절대 부족하다. 풍토병과 빈혈, 허약체질 환자가 상당수지만 주민들이 의료 혜택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전쟁으로 물과 전기공급이 끊겼고, 주민들의 총기 소지율이 높아 총성이 그치지 않는다. 해가 지면 안전을 기약하기 힘든 상황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진료소를 찾은 이 지역 종교지도자(세이크) 하지 압드(60)는 "우리는 가난하고 극도로 어려운 생활을 해왔다. 우리가 후세인 정권 아래 얼마나 어려운 생활을 했는지 세상에 알려달라"며 눈물을 내비쳤다. 곁에 있던 운전기사 라술 라디(40)는 "후세인은 우리를 돌보지 않았다"고 거들었다.

의료봉사단원 의사 윤재형씨는 "몰려드는 환자에 비해 진료팀 규모가 작아 아쉽다"며 "노인 중에는 평생 진료를 한번도 받지 못한 환자들이 많더라"고 말했다.

박용준 단장은 "사담시티 자체가 쓰레기투성이인 만큼 방역작업이 급선무"라며 "경기도 방역대책반과 협의해 방역물품을 우선 지원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역, 의약품, 물과 전기, 식량…. 이곳에 부족하지 않은 것은 공포감 뿐이다.

사담시티=김형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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